작성일 : 18-07-30 16:57
[115호] 시선 둘 - 함께한 상상은 현실이 된다(인권평화기행 후기2).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5,848  

함께한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지은



“저요, 갈게요!”

2월 즈음인가 식사자리에서 올해 인권평화기행은 대마도가 될 것 같다는 말에 손을 번쩍 들었던 기억이다. 아마도 이번 기행의 주최자들은 약 6개월 후 홀로 배낭을 멘 내가 여객터미널에 나타나기까지 이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계속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워낙이 밥 한 번 먹자, 다음에 연락할게는 의례 인사치레로 여기는 데다 미리 약속을 해봤자 내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닌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나는 인권을 업으로 한다고는 하나 부산에 사는데다 연대와는 일로든 개인적으로든 크게 인연을 맺어보지 못한 낯선 사람이다. 그래도 처음 손을 들었을 때부터 한 번도 빈 말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이유는 멀리서도 울산인권운동연대를 눈여겨보고 있었기 때문이다.(감시 아닌 관심입니다) 부산경남거제를 통틀어 '보편적 인권'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활동하는 단체로 유일무이한데다 의미는 있지만 쉽지 않은 인권논문공문전이나 마라톤, 연구소 등 상근자 2명으로는 해 낼 수 없는 일이란 걸 알기에 만나고 싶었다.

인권평화기행만 하더라도 올해로 9회째다. 이번 기행의 주제는 '쉼 그리고 재충전, 역사와 자연을 품은 대마도-자연으로의 회귀 그리고 강제징용의 상흔'.

번잡한 국제마라톤과 태풍은 피했지만 때 이른 불가마 더위는 어디나 매 한가지. 바닷가에 서 있어도 숲에 들어가도 예외는 없었다. “이게 대마도식 더위 쉼 관광” 하며 들어선 나루타키 자연공원의 귀여운 폭포와 슈시강 단풍길. 소문대로 또 오고 싶을 정도로 훌륭했지만 이동 중간 중간 편백숲, 동백숲이야 말로 아름답고 멋있었다. 휴일이라 그런지, 더워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하나 찾기 힘들데 도대체 언제 쓰레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도로와 산림지역을 구분하고 가꿨을까.

지금은 관광업과 진주가공, 버섯 농사, 야메네꼬(산고양이) 보호에 힘을 쏟는 것 같은 대마도지만 100여년 전만해도 거제도에서 끌고 온 조선인들을 시켜 길을 닦고 거대한 포를 산 속에다 만들었다. 우리가 본 도요포대는 콘크리트로 3m 두께로 숙소까지 있는 기단을 동굴에 숨겨 만들고 위에 18m나 되는 포신을 올렸기에 당시 최고의 기술을 동원하고도 5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기껏 거제도 2배 규모의 이 섬에 그런 포대가 12개나 있다니.

우리는 누구의 땀과 눈물 위를 웃으며 달렸는지... 파란만장한 세기를 보낸 약소국의 출신이라 잊히지 않는 것과 잊어선 안 될 것이 많다. 언제가 다시 쓰려나 지금도 일본어지도에서만 포대위치가 나온다.

물이 줄어 평소보다 더 소박해진 폭포를 보고 나서인지 숙소 옆 조용한 해수욕장은 모두의 맘에 쏙 들었다. 맑고 얕아서 아이들과 채집? 취미를 가진 일행에겐 큰 선물이었다. 가이드님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주차장 뷰(오션뷰와 일출장관은 가이드님 차지!) 숙소를 배정받고 분위기를 포기했던 여성 6인방은 채집활동 결과물을 불도 없는 방에서 재주껏 삶고 머리핀을 부러뜨려 해산물 잔치를 했다. 가식 없는 입담과 산책가요 하면 벌떡 일어나는 부지런한 금손 언니들이다.

일본인들은 소식한다더니 한국인 맞춤인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던 바베큐 후에 모인 회원 분들과의 만남. 거래처 사장님도 있고, 언젠가 지원하던 노조원도 있고, 단골 술집 주인도 마주 앉았다. 어디 인쇄만 맡겨서, 피해자라고 지원만 해서, 매상만 올려줘서 이들이 가족까지 이끌고 와서 시간을 내고 각자가 인권연대체가 되어 머리를 맞댈까. 박 대표는 "인권, 운동, 연대" 모두 중요해서 하나도 안 버리고 “울산인권운동연대”라고 이름 붙혔다고 한다. 시작이 화려한 곳은 참 많다. 사람이 북적거려야할 곳에 사람이 사라져가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는 무엇이든 온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래가는 것을 보면 뚝배기 그릇의 온기와 쑥스러운 환대가 있었고 그것을 서로 나누었기 때문에 유지된다고 지레 짐작해 버린다. 과한 칭찬인가. 맞다. 하루보고는 알 수 없는 많은 고민이 있겠지만 재충전의 기행에서는 여기까지만.

이번 대마도행은 일본 왕조 시작이 신라일까 하게 만드는 ‘와타즈미 신사’를 방문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 여행이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을 때 끝났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 마지막에 온 것이다.
“자꾸 추억 만들어 주려고 애쓰지 마세요. 충분해요!” 헐렁한 가이드보다는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가 더 잘 어울리고, 회원보다는 회원옹호자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을 봐야겠다.

내일이 되어 이제 회원가입도 완료다.


※ 이지은(부산 포로리)님은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인권사무소 직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