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6-03 18:31
[185호] 인권 포커스 - 지역인권 옹호 활동의 힘과 가능성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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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인권 옹호 활동의 힘과 가능성

박영철

1.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것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권단체로서의 활동은 냉정하게 말하면 온전히 인권운동만을 전개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지역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인권 의제를 포함한 민주주의 훼손에 맞선 투쟁과 진보적 의제를 확장하기 위한 연대요청에 응답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고 열리는 회의와 기자회견에 대응해야 하며, 집회에서는 해당 사안을 인권으로 해석하여 발언해줄 것을 요청받는다.

노동, 여성, 장애인, 이주민, 아동・청소년, 성소수자 등 부문별 인권운동을 책임지고 있는 당사자단체들과 연대는 늘 긴박한 현안을 중심으로 진행되기에 우리가 준비할 틈을 주지 않는 특성이 있다. 아쉽지만 단체 역량의 한계로 참여하지 못하면 아쉬움을 표시하는 때도 왕왕 있다. 한편으로 지역에서 인권단체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방증이지만, 간혹 우리가 왜 지역의 모든 일에 소환되느냐며 볼멘소리도 한다.
하여튼 모든 것이 인권으로 통한다는 말처럼 지역사회에 인권운동이 깊게 연대하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인권운동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해본다.

2. 인권의 현장, 지역에서 시작되는 변화

“결국, 보편적 인권이 시작되는 곳은 어디일까요?”라고 시작했던 ‘엘리노어 루스벨트’의 연설내용과 같이 인권이 실현되는 공간은 구체적 삶이 있는 현장이다.
나는 인권운동을 크게 두 개의 영역으로 구분하여 점검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인권의 목록을 확장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권보장체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 이후 국제인권조약 등을 통해 확립된 인권의 목록을 사회의 보편적 권리로 확인하는 과정과 함께 발전권, 기후위기와 인권, 기업과 인권과 같이 인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권리항목을 보편적 인권의 목록으로 합의하기 위한 투쟁이 지속해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확립된 인권의 개념과 가치, 기본적 원칙을 규정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소홀히 했다. 그 결과 혐오세력들이 인권을 부정하고 혐오와 차별을 앞세우며 인권을 축소하기 위한 도발을 통해 여전히 인권을 논쟁의 영역에 묶어두고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물론 교권 vs 학생인권, 「학생인권조례」 폐지 등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논쟁의 영역으로 끌고 나오는 것 자체가 이미 철지난 논쟁일 뿐인데 말이다. 따라서 인권의 목록을 확장하는 것과 동시에 이를 사회적으로 합의하기 위한 법적 제도화의 과정은 간과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과제임에는 분명하다.

다음으로 수많은 인권의 목록과 확장될 보편적 인권의 내용이 내 삶의 변화를 이끌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작동할 때 인권은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인권이 어디에서든 작동할 수 있도록 보장체계를 강화하는 것은 국가권력은 물론 인권운동에도 매우 중요한 과제로 설정되어야 한다.
이미 국제사회와 국가, 지방자치단체까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체계를 수립하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전개되고 있다. 문제는 아직 인권이 주요한 국가 의무로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가기관이라면 당연히 논의되고 고려해야 할 인권 사무가 여전히 낯선 사무로 인식되는 현상이 이를 보여준다. 심지어 국가의 인권책무를 강제할 국가인권위원회조차 정치지형의 변화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지점은 한탄스럽다. 문제는 국가 단위의 인권보장기구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국가 인권보장체계가 무너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인권운동진영의 대응은 무기력하다. 정부의 인권기능을 총괄하고 있는 법무부 인권정책과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채택과 이행에 대한 대응전략도 부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정부와 달리 지방정부는 지역주민과의 밀접한 접점을 갖고 행정행위가 이뤄지고 있다. 당연히 관련 행정조직의 개편, 주요사업과 정책은 시민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잣대가 된다. 중앙사무의 분장 수준에서 머물던 지방자치제도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권한이 확대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인권이 구현되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 지방정부의 대응에 주목한다. 지역인권보장체계에 대한 도전이 10년이라는 짧은 역사와 폐지와 제정을 반복하고 있는 「인권조례」의 부침에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인권 행정이 그래서 의미 있다고 본다.
윤석열 정권 아래 급격하게 퇴행하는 인권이지만, ‘지역인권보장체제를 위한 인권활동가
네트워크’(이하 지인넷)를 중심으로 지자체 인권 행정의 퇴행을 저지하는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오늘과 같은 토론을 지속해서 전개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다.
지인넷의 토론과 활동의 결과, 수도권 인권운동진영과 소통을 통해 ‘경로이탈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의 결성과 활동을 촉발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자체 인권행정과 관련한 정책수립과 지원을 견인하는 등 인권보장체계 강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지인넷을 중심으로 인권보장체계 강화에 관한 관심과 논의를 이어가는 웃픈현실이지만, 그래도 역진불가의 인권의 역사에서 보이듯 ‘인권의 주류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준비하고 반전을 모색하는 지역의 인권운동에서 희망을 찾는다.

3. 지역인권운동의 힘과 가능성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인권이 실현되는 공간은 결국 구체적 삶이 있는 현장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지역인권운동은 지역시민사회와 깊은 연대와 신뢰를 기반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는 운동을 인권으로 해석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체계를 강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역인권운동은 인권이 실현되는 현장에 함께하며 인권을 구체화한다. 인간의 존엄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보편적 인권의 목록은 무엇이고 어떻게 보장되는지 그리고 어떤 권리가 더 필요한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실천을 통해 인권의 새로운 과제를 끌어내는 동력을 제공한다. 어떤 이론이 필요하고 대안이 요구되는지 인권이론을 실천하고 검증하고 다시 이론을 확장하는 작업 역시 현장을 배제하고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숨 쉬는 인권, 이것이 지역인권운동의 힘과 가능성이지 않을까?


※ 박영철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입니다.

** 이 글은 2024.05.21.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 광주광역시, 지역인권보장체제를 위한 인권활동가 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주최한 <지역 인권옹호 활동 활성화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울산인권운동연대 박영철 대표의 발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