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6-03 18:23
[185호] 시선 둘 - 2023년 강사역량 강화 ‘개인 시연 발표’를 마치며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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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강사역량 강화 ‘개인 시연 발표’를 마치며

최은영


2019년 울산 인권운동연대 부설 인권교육센터에서 강사과정 수료 후 역량강화교육도 받고 학생 인권 강의를 하고 있지만 해를 더할수록 인권과는 거리감만 더하는 것 같다.

이렇게 거리감을 더해가는 중에도 매년 시연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주제에 대한 고민이 많이 된다. 인권감수성이 부족하다 보니 수업에 활용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마음보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선생님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나의 감수성을 높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항상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것 같다.

올해는 학교 교안 준비가 힘들었다는 핑계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준비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내가 이야기하기보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더 들으면 좋겠다는 꼼수가 더 컸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선정된 영화는 올 1월 개봉된 ‘올드 오크’

연속적으로 지나가는 흑백 사진과 마을 사람들의 흥분된 말소리로 시작하는 영화.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면들은 버스를 타고 마을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들의 불안한 눈빛과 그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날카로운 시선, 서슴없이 뱉어지는 혐오의 말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런 주민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야라’. 그 모습은 곧 마을 주민들의 눈에 띄게 되고 그중 한 주민에 의해 카메라가 망가지게 된다. 눈물을 흘리는 ‘야라’에게 다가와 마을 주민을 대신해 TJ가 대신 사과 한다. 시리아 난민들과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상황을 중재하려고 노력하는 TJ. 그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운영되고 있는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고 있다.

이후 야라는 <올드 오크>로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이를 계기로 야라는 ‘TJ’뿐 아니라 이웃들과 점차 가까워지게 된다. ‘TJ’와 ‘야라’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동안 마을에서도 기부금, 물품이 전달되거나 난민, 원주민들이 함께하는 운동회, 사진전이 열리며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이런 모습을 탐탁지 않게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TJ’의 친구이자 펍의 단골인 이들은 자신들의 평생직장이라 생각한 탄광이 폐광된 후 이렇다 할 사회보장책 없이 실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난민 이주로 자신들의 삶이 더 어려워질 거라는 걱정과 불안, 두려움으로 멸시하는 시선과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마을에 정착해 가는 난민들을 보며 자신들의 어려움과 난민으로 인한 피해를 알리기 위한 공청회를 열고자

공간을 요청하는 이들의 요청을 거절한 TJ. 그들이 요청한 공간에 어려운 환경으로 식사를 챙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무료 식사 공간을 ‘야라’와 다른 자원봉사의 제안으로 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연대하여 만들어진 공간은 난민들과 함께한 즐거운 식사 한 번 이후 문을 닫게 되는데 ....

영화에서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라고 말하며 그것을 하나의 연대로 보여주는데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것 같으면서도 판타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 공간을 고의로 무너뜨린 ’TJ‘의 친구 중 한 명인 ’찰리‘는 후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금세 잊어버리는 우리처럼 그냥 그 모습으로 살 것 같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근거 없는 소문을 이어받아 부풀리고 퍼트리는 모습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라 더 씁쓸하기만 했다.

언젠가 인권 교육을 받고 난 후 한동안 화, 불쾌감, 창피함, 후회, 반성 등 다양한 감정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교육을 받는 동안 내가 하는 행동, 내가 속한 그룹이 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올드 오크>를 보고 난 후에도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건 ’TJ‘와 ’야라‘ 뿐 아니라 그 주변인들의 모습에서 나의,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봤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는 개인 나아가 공동체, 사회, 국가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할 거리와 질문을 만들어줘서 발표 준비가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이것들을 풀어낼 역량이 나에게 없기 때문일 것. 그래서 발표 후의 후련함보다 선생님들에게 질문만 던지고 끝난 것 같은 아쉬움과 해결하지 못한 물음표를 풀어야 하는 과제만 남은 것 같다.

다음에는 좀 더 만족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면서
우리보다 약자를 비난해, 언제나 그들을 탓해
약자들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게 더 쉬우니까.” _ TJ 대사 중


※ 최은영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인권교육센터 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