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 팩트의 홍수에서 진실을 골라내는 데이터 읽기의 기술 -
신현호 저 / 한겨레 2019 / 정리 오문완
이 책은 25가지 이슈를 네 가지로 간추리고 있다. 이 네 가지 제목을 보면 지은이가 이 책을 쓴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베껴 보자면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각 부에서 하나씩만 예로 들어 소개하고 나머지 부분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기로 한다.(읽기를 권하며)
1부의 다섯 번째 꼭지 <네가 고통받을 때, 나는 쌤통을 느낀다 : 샤덴프로이데>에서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 소개한다. 이 말은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느끼는 쾌락’을 뜻하는데 ‘쌤통 심리’라고도 번역하지만 딱 떨어지는 번역은 없다. 질투는 ‘타인의 행복으로부터 느끼는 불행감’이니 샤덴프로이데와 대칭적인 개념이다.
최근 뇌과학과 진화론적 분석에 의하면 질투와 샤덴프로이데는 우리 본성 중 일부일 수 있다고 한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질투와 샤덴프로이데는 우리에게 일정한 자극을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그렇듯 샤덴프로이데도 지나치면 그 심각함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갈 수도 있다. 역사학자와 심리학자들은 나치가 행한 유대인 학살의 근원에 샤덴프로이데 심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샤덴프로이데가 적절한 선에서 제어되도록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웃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실업자들이 성별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지 조사한 결과를 보여주는 표를 보면, 흥미롭게도 남성은 샤덴프로이데를 보이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실업 상태에서 이웃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이웃의 실업자가 늘어나는 것이 행복도를 오히려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흔히 질투나 샤덴프로이데 심리를 여성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연구는 그것이 얼마나 근거 없는 편견인지를 또렷이 보여준다.
2부의 열한 번째 꼭지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후 30년 : 계급과 사법 정의>에서는 ‘수백만 원 훔친 자 17년, 수백억 훔친 자 3년’을 외치며 1988년 탈주극을 벌인 지강헌의 탈주극을 예로 들어 사법의 편향성을 지적한다(이 사건은 2006년 영화 <홀리데이>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이 편향성이 통계적으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2009년에는 각종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제정해서 횡령과 배임 금액별로 징역형에 대한 양형 기준이 강화되었다. 그 결과 집행유예 비율이 떨어졌는데, 재벌과 비재벌 사이의 격차는 오히려 확대된 것으로 나타난다.
현행법상 징역형이 3년 이하일 때만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해서 사법부는 재벌 등 특권층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석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를 비꼬는 조어로 ‘3?5의 법칙’이란 게 등장한다.
3부에서는 데이터를 다루면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을 다섯 가지 꼭지로 보여준다. 여성정치할당제가 전반적으로 정치인의 자질을 높인다는 논문이(일반론으로 입증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직은 무리일지라도) 선입견과 반대되는 효과를 발견하면서 국제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아내처럼 연기하기: 결혼시장 인센티브와 노동시장 투자>라는 논문은 MBA 학생이 희망하는 연봉을 조사했는데, 재미있는 결과를 보여준다. 남학생과 기혼 여학생들의 경우 회람 공개를 기준으로 나눈 두 그룹이 전혀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미혼 여학생들의 경우, 가이드만 회람하는 그룹에 비해 다른 학생들도 함께 회람하는 그룹은 희망 연봉을 평균 1만 8,000달러 낮추었고 희망 주당 노동시간도 네 시간 줄였다. 이 결론은 유리천장은 우리의 일상 의식 속에도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유리천장이란 법과 제도만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고, 남성과 여성 모두가 일상에서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유리천장을 깨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영역의 정의로움을 넘어서 직장 내 권력 관계와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성폭력을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시한다.
최근 북유럽의 ‘아빠 할당제(daddy quota)’라는 이색적인 제도에 관심이 가는데 아빠가 아이의 육아에 적극 참여할 경우, 아이의 언어 및 인지능력이 향상되고, 성적이 오르며,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더 좋아지는 ‘아빠 효과(father effect)’가 발생한다고 한다.
4부의 스물두 번째 꼭지 <표가 결정하는가, 돈이 결정하는가 : 기부금과 정책편향>에서는 국가의 정책이 부자의 선호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차트로 보여준다. 그리고 혹시라도 정치자금법 개혁을 빌미로 정치자금액 한도가 대폭 늘어나거나, 부유층과 기업이 정치 기부금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재산과 소득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정치에 그대로 반영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민주당의 진보파를 대변하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2018년 8월 ‘책임감 있는 자본주의 법(Accountable Capitalism Act)’을 발의했고, 공화당 성향 국민들도 상당수가 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미래를(조금은) 기대하게 만들어준다.
지은이는 차트의 효용과 폐해를 이렇게 지적한다. : “차트가 주목받는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특성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글을 읽을 때는 집중해서 의식적인 활동을 통해 평가를 내리는데, 이것을 주의(attentive) 처리라고 합니다. 반면 그림(차트)을 볼 때는 다소 직관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흡수합니다. 주의를 기울이기 이전에(pre-attentive) 받아들이는 것이죠.……이것은 양날의 검입니다. 정보처리의 특성 때문에 잘못 작성된 데이터와 차트는 글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책의 10쪽) 결국 공은 우리한테 넘어온 셈이다. 대중이 정신을 차리느냐 못 차리느냐가 관건이다.
지은이는 차트를 보여주면서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는 영리한 전략을 구사한다. 하지만 제시한 차트가 온전히 진실을 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책을 읽고, 그 부제(副題)인 ‘팩트의 홍수에서 진실을 골라내는 데이터 읽기의 기술’을 전수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통계 수치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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