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동기본권과 인권의 완성이다’
김재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후퇴를 비판하며 정부의 조건 없는 비준을 촉구하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는 지난 4월 15일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법 개정 쟁점에 대한 공익위원안을 발표했다. 공익위원들은 ILO 협약 비준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임을 우선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은 ILO 협약 비준과 관계없는 노동법 개악안들이 담겨져 있다.
공익위원 안에는 해고자, 실업자, 공무원 등의 노동조합 가입과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보장 등을 담고 있다. 그동안 노동계가 요구해 왔고 ILO가 대한민국 정부에 비준을 권고해 왔던 핵심 내용들이다. 그러나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파업시 직장점거 금지’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삭제’ 등도 담고 있다. 경영계와 사용자단체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물론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서 대체근로 전면허용, 사업장내 쟁의행위 금지, 쟁의행위 찬반투표 요건 강화 등과 함께 끊임없이 요구해 온 것들이다.
문제는 경영계의 요구사항들이 노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에 개입하는 것으로 노동 3권을 부정하는 위헌적인 내용이다. 헌법상 보장된 노동 3권은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고 특수고용,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할 권리는 안중에도 없다. ILO가 대한민국 정부에 비준을 요구하는 핵심 협약은 모든 노동자의 노동조합 할 권리, 완전한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기본 협약이다. 공익위원 안에 포함된 경영계 요구사항은 ILO 협약에 논의될 사항도 아니고 협상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더 큰 문제는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정부의 태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부터 ILO 협약 비준으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공약해 왔다. 그러나 협약 비준의 주체인 정부는 노사 간의 합의를 통한 노조법의 우선 개정과 국회 동의 이후에 ILO 협약 비준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ILO 협약을 정부가 우선 비준하고 이후 입법 조치에 나서자는 노동계의 요구를 묵살한 것은 경영계 요구사항을 충분히 담아 주겠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이 안 된다. 노동계는 이날 발표된 공익위원안이 이러한 경영계와 사용자단체의 민원을 담고 있는 안으로 정부의 노동정책 후퇴의 결정판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으로 정리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후퇴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났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약은 속도 조절에 나선지 오래다. 인상된 최저임금 효과 또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으로 무력화 되고 말았다. 노동시간을 단축했음에도 탄력근로 확대로 장시간 노동을 부추길 우려만 높아졌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은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핵심 노동공약이다.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노동 공약과 정책들이 오히려 정부와 국회가 앞 다투어 기업과 사용자들의 민원창구 역할을 하며 법 취지를 훼손하고 노동법을 개악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올해는 ILO가 설립된 지 1백주년 되는 해이다. ILO는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의 금지, 아동노동금지, 차별대우금지 등 최소한의 국제노동기준을 ILO 핵심협약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결사의 자유(제87호, 98호)와 강제노동의 금지(제29호, 105호)는 비준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 OECD 가입당시부터 ILO 협약 비준을 줄기차게 약속했으나 지난 23년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유럽연합에서 우리나라가 ILO 협약 비준을 지연하자 한·EU FTA 위반을 주장하며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기도 했다. ILO 협약 비준은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국가의 품격에 대한 문제가 되고 있다.
ILO 협약 비준은 국가가 노동자들의 기초적 권리와 인권을 보장하는 밑거름이자 노동기본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ILO 협약 비준은 노동 기본권과 인권에 관한 사항이라 애당초 노사 간 흥정의 대상도, 협상으로 풀 문제도 아니다. ILO 협약을 비준하지 못한 책임을 노사와 국회에 떠 넘겨서는 안 된다. ‘하나를 들어 줄 테니 다른 하나를 챙겨 달라’는 식의 조건을 달아서도 안 된다.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그리고 노동인권 보호하고 노동기본권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책임과 신속한 결정이 있으면 된다. 굳이 따진다면 지난 4월 15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발표한 내용도 정부가 우선 비준한 후에 논의 되어야 할 것들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동인권 기준을 국제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협약 비준의 주체는 명백히 정부다. 정부는 더 이상 책임을 미루거나 방기하지 말고 국제사회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는 6월, ILO 100주년 총회에서 대한민국이 노동후진국의 오명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문재인 정부의 조건 없는 신속한 비준을 기대해 본다.
※ 김재인 님은 한국노총 울산본부 정책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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