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0-01 17:37
[117호] 시선 하나 - '시선 사이' 영화소감문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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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사이’ 영화소감문

황혜주



재미있다고 마냥 웃을 수 없었던 세편의 영화를 만났다. 요즘 많이 쓰는 ‘웃프다’는 표현이 맞을까?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과대망상자들>, <소주와 아이스크림> ‘시선 사이’는 이렇게 세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영화였다.
작년 ‘4등’에 이어 두 번째 울산인권운동연대의 인권영화상영회에 참여했다.

성적향상을 위해 어느 날 갑자기 교문을 폐쇄한 학교에서 목숨 같은 떡볶이 한입을 먹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지수와 사람들을 피해 숨어살며 불안해하는 청년 우민, 선배도 가족도 그 누구도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없는 보험설계사 세아를 만났다. 소주 한 박스를 주며 세아에게 아이스크림으로 바꿔달라던 아주머니를 만났다. 원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으나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미 죽은 사람이었던 언니네 앞집 아주머니.

그들은 대한민국 어디쯤에 있을까? 우리 집 딸이 지수이고 과대망상에 걸린 우민이 어쩌면 나인 듯 했다. 회사생활 한다고 이래저래 눈치 보며 고생하는 남편이 떠올랐다. 늘 자식을 보고파하는 부모님이 생각났다. 우리 시선사이 어디든 그들이 있다. 불안한 눈길을 어디에 둘지 모른 채.

우리 집 큰딸 승혜는 고등학교 1학년 올라가자마자 새벽 7시에 나가 밤 11시쯤 무표정한 얼굴로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하고 싶은 것, 즐거움은 대학을 가기위해 저당 잡히기를 강요당했다.

“우리를 위한 겁니까? 학교를 위한 겁니까?”
지수는 이렇게 거침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오로지 떡볶이를 먹기 위해 내달린다. 살기위해 살아가기 위해 달린다. 드디어 받아든 양동이에 듬뿍 쌓인 떡볶이를 먹는 모습을 보며 통쾌하기도 했지만 고작 학교 다니는 낙인 떡볶이 하나 먹는데 저렇게 힘든가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함께 기뻐해주고 슬퍼해주고 미친 듯이 함께 떡볶이를 먹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학창시절에 가장 큰 행복일 것이다. 지수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소주와 아이스크림>의 보험영업을 하는 세아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있지만 돈을 요구하며 짐이 되었고 언니는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게 냉정하게 보험 하러 왔냐고 반갑지 않다고 말한다.
세아의 마지막대사 “언니 나, 나 한번만 안아주면 안 돼?”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 머문다.
‘나 한번 안아주면 안 돼?’ 라고 말한 이미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언니집 앞집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힘들 때 다른 말은 필요치 않은 것 같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곁에 있어 주는 것, 안아주는 것도 큰 힘이 되지 않을까?

그들이 세상에 시선 둘 곳 없어 헤메일 때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누군가 늘 서있었으면 한다. 지수가 가격을 못 매겨서 팔수 없다고 했던 푸지게 떡볶이 먹는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당연히 마음통하는 친구들과 함께, 우민이 자신을 숨기고 세상을 의심하며 살아가지 않도록, 세아가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권활동가로서 첫발을 떼고 있는 나도 늘 그곳에 서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본다.

울산청소년인권법을 제정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도 있다. 청소년을 위한 정책·사업을 발굴해 울산시에 제안하는 활동을 할 ‘울산시 청소년의회’를 만들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도 시작되었다. 어려움이 있지만 모든 것은 인권감수성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인권이고 인권이 민주주의 아닐까?
서로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시선 사이’와 같은 인권감수성을 키워주는 영화도 커다란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소중한 영화 상영 준비한다고 애쓴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로 영화감상을 마무리 한다. 감사합니다!


※ 황혜주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