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9-30 15:17
[129호] 편집후기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5,720  
편집된 시선이 아니길...

편집위원


“NO, 아베”의 목소리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조국사태’(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사태’라고 표현했습니다.)가 이를 덮어버린 듯합니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조국사태’는 지속될 것입니다. 더불어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주장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겠지요.

지나온 사건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이 컸던 사건은 8월 26일에 나온 서울대총학생회의 입장문이었습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입장문에서 조국 후보자의 딸에게 쏟아지는 각종 의혹들을 열거한 후 “언론을 통해 제기된 조국 후보자에 대한 의혹들이 모두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 조국 후보자가 해당 사안들에 직접 개입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면서도 “자신에게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법적인 문제는 없다’라고 말하며 후안무치의 태도로 일관하는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백 명의 동문이 참여한 8월 23일의 촛불집회가 이를 뒷받침한다.”며, “원칙과 상식이 지켜지는 나라,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입장문을 읽어보면서 과연 이것이 대한민국 최고 두뇌들이 모여 있다는 서울대학교의 총학생회가 밝힌 것이 맞나 의심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님께서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의 입장문에 학점 C+를 주면서 “이 입장문의 가장 큰 논리적 약점은, 의혹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사퇴를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의혹이 많으면 진상을 밝히라고 주장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고 평가를 해주셨더군요. 더불어 “서울대 학생들과 동문들은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특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며, “여러분이 느끼는 부조리에 대한 분노는...(중략) 입시제도의 부조리를 향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그 입시제도의 혜택을 누린 원죄를 지고 있더라도 말입니다.”고 첨언도 해주셨더군요.

26일 경북대학교에서도 총학생회 회장단과 중앙운영위원회도 ‘우리의 교육을 외치다’는 제목으로 세 가지 요구사항을 정리한 입장문을 발표합니다.
하나, 현재 장관 후보자에 대해 제기되는 의혹을 조사하여 낱낱이 밝혀라. (중략) 사실과 다른 의혹이 있다면 해소하고,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묻도록 하여 교육을 더 이상 이념적 소용돌이에 몰아넣지 말라.
하나, 고위 공직자의 자제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라. (중략) 정치사회적 역학으로 인해서 우리의 교육이 희생 받지 않게 하라.
하나, 대한민국의 입시제도와 교육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라. (중략) 객관적이고 투명한 평가를 기반으로 입시를 진행하고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들이 교육을 주도하게 하라.

서울대학교총학생회 입장문과 확연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지성(知性)의 고민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총학생회의 입장과 움직임은 연일 언론의 중심에 놓여져 있으나,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의 입장문은 관심영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언론도 개인의 이탈에 초점을 맞출 뿐 구조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구조의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라 외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종학 교수님이 말했듯이 어쩌면 구조로부터 ‘그 누구보다 가장 특혜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9월 20일 고발인 신분으로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출석하면서 “검찰의 선택적 수사. 분노. 정의에 너무 개탄스럽다.”던 임은정 검사의 말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편집되어버린 시선으로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본다면 분노는 ‘선택적 분노’이며, 정의 역시 ‘선택적 정의’가 될 테니까요. 편집은 언제든지 편협으로 변할 수 있는 위험이 있기에 작은 지면임에도 불구하고 ‘인연’에 대한 편집은 늘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