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시마, 진정한 산행대장은 누구? - ②
김영해
요도가와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하여 7시간 남짓 산행 끝에 야쿠시마 정상 미야노우라다케 (1,936m)에 도착했다. 정상은 오르기 직전의 화창한 날씨와는 상반되게 강풍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산행 선두는 김종수 회원이, 말미는 박영철 대표가 맡았는데, 어느 순간 일행 3명이 보이지 않았다. 중간 중간 기다렸지만 일행의 모습은, 사람의 형체는 찾을 수 없었다. 연락방법은 없고,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었지만, 그 방법 또한 녹록치 않았다. 보이지 않는 일행이 걱정되었지만, 오래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일단 선두3명(나와 전효정 선생님, 김종수 님)은 정상을 넘어 신다카츠카 산장으로 향했다.
신다카츠카 산장은 무인산장으로 도착한 순서대로 묵을 수 있는 곳이다. 자칫하다가는 6명 일행 모두가 노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걸음을 재촉했다.
바위 곳곳은 얼어 있었고, 강풍은 굉음을 내며 휘몰아쳤다. 고산지역에서 자생하는 활엽관목인 만병초는 군락을 지어 하얀 얼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눈인지 비인지 모를 물기와 강풍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산장으로 가는 길은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험난한 길이었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 아니 길인지도 구분되지 않은 좁은 통로와 바위들을 넘어 가끔 밧줄에 의지한 채 오르락내리락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코 앞 만 보고 가야지 자칫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았다가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길. 길이 어딜까 고민하는 순간 동아줄처럼 밧줄이, 등산 리본이 이정표가 생명줄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선두3명은 서로를 의지하며 산장에 묵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두려움과 고행에 맞서 앞으로 나아갔다.
신다카츠카 산장에 도착하니 다행히 일본인 한 팀만 있었다. 산장은 2층으로 된 목조건물로, 대략 여섯 팀 정도 묵을 수 있을 정도의 규모였다.
자리를 잡고 어둠이 내리기 전 식수를 구하기 위해 효정선생님과 나는 냇가(?)로 향하고, 종수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을 챙기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활동가 가연쌤이 다리를 삐어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산행이 힘들다는 사람을 꼬드겨
같이 가자고 해놓고 내가 먼저 산장에 도착했으니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운지.
다행히 큰 부상 없이 무사히 상봉(?)할 수 있어 감사했다.
오후 5시경 캠핑용 후레쉬와 랜턴에 의지한 채 라면과 오니기리로 늦은 점심겸 이른 저녁을 먹고, 오후 7시쯤 난생처음 환경에 의한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신다카츠카 산장에서의 하룻밤은 옷을 겹겹이 껴입고 대여해 온 매트와 침낭, 그리고 핫팩으로 무장했음에도 바닥의 냉기를 차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또한, 음식물 때문에 쥐가 올 수 있다고 하여 모든 음식물과 쓰레기를 상단줄에 매달고 잠을 청했음에도, 쥐의 공포까지 더해져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그렇게 새벽을 맞았다.
뒷날 새벽5시 우리는 즉석카레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7200년이 넘은 삼나무 조몬스키와 윌슨 그루터기,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시라타니운수협곡을 지나 야쿠시마 산행일정을 마감했다.
제일 큰 짐을 지고 힘든 내색 없이 등반한 것도 모자라 미처 도착하지 못한 일행을 챙기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고행도 마다하지 않은 종수님.
힘들어하는 일행을 챙기며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챙기는 말미에서의 대표님.
진정한 산행대장은 누구일까?
선두와 말미에 책임 있는 역할을 했던 두 분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어느 순간부턴가 앞 뒤 보지 않고 오롯이 산에 미쳐(?) 거침없이 나아가기만 한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며, 그렇게 나는 산에서 사람을, 관계를, 인생을 배운다. 무엇보다도 나를 오롯이 나로 바라본다. 거대한 자연에서…….
일상으로 복귀했다. 집에 도착하고 씻고, 간단히 짐을 정리하니 가족들이 귀가할 시간이다. 김치찌개를 끓이고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난 언제 거대한 야쿠시마에 다녀온 걸까???
하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다.
누군가는 노란 등산복을 사고, 또 누군가는 큰 배낭을 사고, 또 누군가는 일정을 잡고, 또 누군가의 새 멤버와 함께 야쿠시마에 오르겠지. 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다시 오를 야쿠시마를 꿈꿔본다. 그때는 진정한 산행대장이 될 수 있을까?
※ 김영해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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