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할 수 있는 세상, 참 좋은 세상
김혜란
성폭력 2차 피해란 성폭력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고 난 뒤 사건 해결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개인정보 등이 노출되어 악성 댓글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거나 수사 과정에서 잘못된 사회통념과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피해자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것, 회사나 조직이 가해자 징계를 미루거나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이익한 조치를 하는 것, 가족이나 지인으로부터 평소 행동 등에 대한 평가를 받아 죄책감을 느끼는 것 등을 말한다.
지난 1월 말 한 검사가 8년 전 조직의 선배검사에게 당했던 성추행 피해 폭로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온 “미투”를 통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차별적이고 성폭력적인 사회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여러 조직의 “존경받던”, 가해자들은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성추행을 일컬어 “오랜 동안 행해졌던 나쁜 관습” 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범죄를 일컬어 관습이라고 말하는 권력자들, 그들의 무자비하고 반인권적인 관습은 어떻게 공고히 유지되어 왔을까,
왜 사람들은 추행을 거부하지 못하고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뒤에라도 조직의 선배나 동료들에게 도와 달라 말하지 못하고 범죄임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못했나? 우리들은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우리 얘기에 귀 기울여주고 억울한 일을 해결해 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억울하고 힘든, 우리가 당한 일을 털어놓을 것이다. 설사 그 억울한 일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우리에게 공감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억울한 감정도 조금은 가벼워 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성폭력 범죄 신고율이 5%미만이라고 알려진 나라다. 절도, 강도, 교통사고 등 어떤 범죄도 신고율 5% 미만은 없다. 심지어 범인이 누군지 모르는 경우라도 많은 피해자들은 자신의 범죄 피해를 밝혀 범인을 잡아 처벌해 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성범죄는 80% 정도가 아는 사이에서 발생한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신고율이 낮을까?
그것은 바로 2차 피해 때문이다. 성폭력을 당했다고 말을 하는 순간 피해자에게 덧씌워지는 프레임, 그것은 성폭력 통념에 의한 피해자 바라보기다. 술에 취해서, 짧은 치마를 입어서, 밤늦게 다녀서, 행동이 좀 헤퍼서, 심지어 차에 따라 타서…….
이밖에도 수많은 통념은 “피해자 네 잘못”이라고 주입시킨다. 왜 돈이 많아서 도둑질을 당했냐고 절도 범죄 피해자에게 묻지 않는다. 왜 자다 깨서 도둑을 강도로 만들었냐고 강도 피해자에게 묻지 않는다. 사고 위험이 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왜 차를 직접 운전했냐고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묻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는가, 우리는 강자의 눈으로 사회를 보도록 교육하고 훈련받았다. 그래서 약자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도 우리 사회의 다른 범죄처럼 어떤 법과 제도로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성폭력 근절을 위한 캠페인과 교육을 셀 수없이 하더라도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성폭력 범죄가 사라지는 세상이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가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이다.
※ 김혜란님은 울산동구가정성폭력통합상담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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