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은 권리다!
송혜림
최근까지는 그냥 일생활의 균형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워라밸’이라 부릅니다.
‘Work and Life Balance’를 짧게 줄인 말인데요. 정책적으로도 워라밸은 매우 부각되는 주제인데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3월에 의결되었고 이제 7월이면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이 된다는데요, 이런 제도적 변화도 워라밸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즉,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 1순위가 워라밸이고. 워라밸을 위한 구체적 대책 또한 많이 있겠지만 그 중 1순위가 근로시간 감축 이라는 것이지요. 이 제도의 기대효과, 부작용, 효율적인 적용방안 등은 노동을 잘 아는 분들이 열심히 알려주시면 되겠고요. 저는 가족 이야기로 한 번 이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의 최저출산율을 분석할 때 늦게 결혼하고, 아예 결혼을 안 하고, 여성취업은 증가하고, 아이 기르는 경제적 부담이 크고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되는데요. 대부분의 OECD 국가도 결혼과 출산 관련하여 우리와 유사한 방향으로의 변화가 있지만, 여성취업은 좀 다릅니다. 출산율도 우리보다 높고 여성취업률도 높고 여성의 경력단절도 없는 국가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즉, 여성이 취업을 많이 할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상이라는 겁니다.
여성의 결혼-임신-출산-돌봄으로 이어지는 10년 혹은 15년 동안 경력단절이 발생하고 따라서 여성의 생애노동주기가 소위 M-curve를 나타내는 현상을, 지난 30년 동안 한 번도 해결해 본 적 없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임신과 출산, 자녀 돌봄 등으로 인해 경력 단절이 일어나는 것은, 가족과 일 혹은 가족생활권과 노동권을 양립시키지 못하기 때문이고, 바로 워라밸이 안 되기 때문이겠지요.
OECD 국가에서는 출산율 회복을 위해 아동수당, 어린이집 증가 등 많은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결국은 일생활의 균형에서 답을 찾았다는 연구결과도 있고요. 일본은 ‘먹고 살 만 해야 애도 낳는다’는 관점에서 경제적 지원에 초점을 두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전문가들은 그동안 ‘출산정책’ 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를 해 왔는데요. 어떤 정책의 결과로 출산율이 높아지고 낮아지기는 하겠지만, 정책의 목표가 출산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꾸준히 출산정책이란 말이 회자되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들이 동원되었으나, 출산율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이제, 정부 차원에서 ‘출산’ 이라는 말을 안 쓰기로 했다는군요. 대신 ‘가족행복’ 이라는 말을 쓴다고요. 자녀들이 행복하게 잘 자라고, 부모들의 워라밸이 잘 이루어지고, 백세시대가 축복으로 여겨지는 사회가 되면, 젊은이들은 알아서 결혼을 할 터이고 아이를 낳을 터이고 자연스럽게 청년층의 N포(결혼 출산 내집 꿈 연애 등 많은 것을 포기)현상도 해결되겠지요. 결국 워라밸과 가족행복은 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겁니다.
잠깐, 다른 면을 살펴보면, 워라밸은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을 보죠. 초등학생이건 중·고등학생이건 밤늦게까지 학원을 오가며 귀가가 늦고 밥 한 끼를 식구들과 제대로 못 먹는 현실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워라밸이 안 되기는 어른과 매 한가지지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 살고 싶은 저는,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매번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그러니 워라밸은 이제 일상의 권리라고 해야겠지요. 아이들은 공부하고 놀고 자고 쉬고 먹고 가족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삶, 어른들은 일하고 여가를 보내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삶은 나의 권리이므로, 이제 또 우리들 각 자의 숙제를 살펴봐야할 것 같습니다. 일터, 학교, 집 등 나의 일상생활 환경 속에서 나의 워라밸 수준은 어떠한지, 무엇부터 고쳐야 할지...국가에게는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단체는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무엇을 연구해야 할지...
※ 송혜림 님은 울산대학교 교수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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