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29 17:20
[141호] 여는 글 - 여행을 권유(초대)합니다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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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권유(초대)합니다

오문완



시 한 편으로 시작하죠. 누구나 소싯적에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꽤나 알고 싶은 시인이었을 겁니다.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다고 알려진 랭보(Arthur Rimbaud)와 함께. 이들을 상징주의 또는 초현실주의 파(波)라고 분류하지요. 보들레르의 시집으로는 《악의 꽃》이 대표적이고 그 가운데 <여행으로의 초대(권유) L'invitation au voyage>가 유명한 시입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Mon enfant, ma soeur,
Songe ? la douceur
D'aller l?-bas vivre ensemble!
Aimer ? loisir,
Aimer et mourir
Au pays qui te ressemble!

내 아이 내 누이여,
꿈꾸어라 달콤하게
그곳으로 떠나가 함께 살 것을!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고 죽고
너를 닮은 나라에서!

꽤나 자극적이지요. 그러면 여행은 이렇게 멋진 건가요.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고, 돈도 많이 듭니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맛난 것 먹어가며 텔레비전에서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게 훨씬 편안합니다. 그래서 영어에는 ‘armchair traveler’라는 표현이 있답니다. ‘방구석 여행자’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여행을 떠납니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즉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는군요. 우리 유전자에는 떠나려고만 하는 친구가 있다는 얘기죠. 한군데 머문 종족은 사라졌고 끊임없이 이동한 종족만 살아남았다는 겁니다[요즘 진화론을 얘기할 때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주장하는 분은 없는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족속이 살아남았다고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기린이 목이 긴 이유는 목이 긴 기린들만 살아남아 후세에 자기 유전자를 물려주었다, 뭐 이런 식이지요].
그러면, 생존을 위한 여행이 왜 인권하고 관련이 될까요? 인권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면 여행도 그런 것인가요? 최근에 소설가 김영하의 책에서 재미있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좀 길지만 참고, 차근차근 읽어주세요.(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 213-214쪽) 여행은 인권, 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까요.

‘여행의 이유’를 캐다 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이 책에 도움을 준 고마운 이름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여행에서 내가 만난 모든 이들, 돈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간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태워준 무수한 타인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은 있다. 바로 긴 여행길에서 나를 참아준 동행들이다. 가끔은 별것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날선 말로 감정을 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느낌을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었던 이들, 이들이 없었더라면 여행은 그저 지루한 고역에 불과했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지구에서의 남은 여정이 모두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원해본다.

여기까지가 (엄청나게 긴) 서론이구요, 본론과 결론은 짧습니다. 올해 울산인권운동연대는 2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각종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아쉽게도 코로나19라는 정체불명의 존재와 더불어 살 것을 강요받으면서 이 모든 행사는 취소 또는 축소되어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하나가 남았는데요. 지난 10년 동안의 인권평화기행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기행집을 내는 일입니다. 원고가 어느 정도는 모였고 퇴고 작업을 한 후 이를 편집해서 출판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책 제목은 《인권을 걷다》(가칭)라고 잡았습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 바랍니다. 좋은 의견 있으면 보내주세요. 나중에 책 나오면 주위 분들한테도 권해주세요.


※ 오문완 님은 울산대 법학과 교수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인권연구소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