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29 17:06
[141호] 이달의 인권도서-『문학으로 읽는 나의 인권 감수성』- 김경민 저 / 지식의날개 2019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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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나의 인권 감수성

김경민 저 / 지식의날개 2019 / 정리 : 김창원



정유성은 추천사에서 ‘불편함’과 ‘부끄러움’은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핵심은 ‘공감’이다.”라며 “이 책으로 ‘불편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나눌 수 있는 기회 두루 열리기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작가 김경민 역시 “자신의 인권이 침해받는 상황을 넘어, 타인의 인권이 침해받는 상황에서도 발현되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인권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그의 고통을 경험하는 것(공감)”이 쉽지 않겠지만 “문학이라는 더 할 나위 없는 훌륭한 기회를 통해서라면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된다.”고 했다.

Ⅰ. ‘여성’이자 ‘노동자’로 살아가기 ? 여성노동자들의 인권 이야기

<서울로 가는 길>을 쓴 송효순은 열일곱 살에 화학공장에 취직해 ‘여공’ 혹은 ‘공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p39). 자의든 타의든 가족을 떠나왔던 소녀들은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나게 된다(p44). 고발장을 노동청에 제출한 사실을 알고 “누가 집안일을 밖으로 끌고 나가서 이야기 하느냐”, “나쁜 년들(…) 누가 아버지를 고발하느냐.”(<서울로 가는 길>)(p45)
‘노동자’라는 공통의 정체성보다 ‘남성’과 ‘여성’의 성별 차이라는(…)문제의 정점에 직장 내 성폭력 문제가 있다(p53). “내가 삥땅을 안 했다는 결백함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옷을 벗는 일밖에는 없었고, 그래서(…)했다. c8(…)”(소금꽃나무)(p56)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82년생 김지영>)인 것처럼 세상은 수군거리고, 여성들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런 이유에서 김지영 씨 역시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 성취감을 느끼며 즐겁게 일하던 직장을 그만둔다. 결코 “김지영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82년생 김지영>)(p79)

Ⅱ. 대도시 서울의 발전과 인권으로서의 주거권 ? 도시개발과 도시 빈민의 주거권 투쟁

‘사람’이 배제된 주거공간은 평당 가격이라는 몇 개의 숫자로만 표현되는 차가운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람을 내쫓고 들어선 그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되었다(p97). “차제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유혹의 손에 덜미를 잡혀”(<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돈 이십 만원을 주고 입주권을 손에 넣는다. 물론 권 씨가 사들인 그 입주권 역시 “불행한 어느 철거민의 소유였어야 할”(<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것이었다(p99). 재산권을 주장하는 이들의 뒤에는 자본과 결탁한 정치권력을 비롯해 사법과 언론이 함께하고 있다. 심지어 종교의 힘까지 가세하기도 한다. (<삼각의 집>의 교회. <망루>의 세명교회)(p121).
Ⅲ. 끝나지 않은 국가폭력에 대한 문학적 재심 ? 5.18의 문학적 형상화와 국가폭력의 공론화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년이 온다>)(p156). 증언을 위해 5월의 그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p157).
“죽은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내가 더 고통스러움을 당했지요. 정말 사는 게 아니었어요. 아무도 내 고통을 모를 것입니다.”(<최루증>) <최루증>에서 주인공이 찍은 사진 속 군인은 자신의 고통이 죽은 사람의 그것과 비교해 더 크다고 하소연한다(p162). “미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어차피 우리는 함께 미칠 수밖에 없는 연놈들이다.”(<어둠꽃>)은 종남의 절규처럼 80년 5월의 현장을 목격한 이들 가운데 온전히 제 정신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p168).

Ⅳ. 가해자로서의 반성과 피해자로서의 용서 -두 번의 전쟁, 피해자로서의 한국과 가해자로서의 한국

“마음의 빛이 있다.” “책임을 통감한다.” 이 둘은 모두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비극에 대한 발언이다. 하나는 우리가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했던 것이다(p190). ‘따이한 제삿날’이라 불리는 그날은 30년 전 ‘박정희 군대’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던 날이다. 집 마당의 땅굴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한국군이 던진 수류탄에 죽어야 했고, 한국군에게 발각되어 끌려 나온 이들은 논 한가운데서 기관총 세례를 받아야 했다(p215). 한국군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고스란히 라이 따이한에게 향했고, 이들은 베트남 사회에서 차별과 조롱의 대상이 된 채 살아가고 있다(p226).

Ⅴ. ‘국민’과 ‘인간’ 사이의 딜레마 ?이주노동자, 재중동포, 난민, 북한이탈주민, 그들의 인권

“니네 나라 택시 있냐.” 조롱과 비하가 잔뜩 묻어있는 이 질문에는 오직 경제력으로만 순위를 매겨 가난한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 전체를 비하하는 그릇된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이런 시선을 가리켜 ‘GDP 민족주의’ 혹은 ‘GDP 인종주의’라 부른다(p249).
재중동포가 자신의 조국에서 겪는 수모는 이주노동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p255). 우리는 이들에게조차 여전히 ‘GDP 인종주의’의 차별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p262).
잠재적 범죄자, 괴물, 테러리스트 등(…)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린 이들이 한국에서 갈 곳은(…)통제된 수용소일 것이라는 상상에서 최인석의 <스페인 난민 수용소>는 시작된다(P263).
“인천공항에 내릴 때만 하더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그러나 하나원을 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탈북자는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집밖으로 나가면 나도 모르게 주눅 먼저 들었다.”(<찔레꽃>)(P274)
「대한민국헌법」의 조항은 “모든 국민은”으로 시작된다(P284). 약자를 향했던 칼끝이 나를 향하기 전에, 그리고 내가 다른 누군가를 향해 그 칼날을 겨누기 전에(…)끊임없이 상상해 보자(…) 「대한민국헌법」에 명시된 인권의 주체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이기를(p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