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28 17:04
[140호] 시선 하나 - 인국공 사태 - ‘공정’과 ‘혐오’ 사이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4,938  

인국공 사태 - ‘공정’과 ‘혐오’ 사이

홍용희


지난 6월, 인천국제공항은 1902명의 여객보안검색요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하였고, 이는 수많은 취업준비생, 직장인 등의 반발을 낳았으며 그로 인한 후폭풍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듯하다. 수십만 명이 이를 반대하는 국민청원에 동의하고 취업준비생들은 ‘내가 몇 년을 공부했는데’라 한탄하고, 직장인들은 ‘내가 얼마나 어렵게 입사했는데’라며 허탈해하고 있는데, 이 정도의 분노를 낳은 것은 ‘알바가 고연봉 정규직이 되었다’, ‘기존 정규직과 같은 급여와 처우를 제공 받는다’ 등을 내용으로 한 가짜뉴스가 수구언론과 야당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가 청년들을 선동하였기 때문이다.

# 가짜뉴스의 확대 재생산을 막지 못한 원칙과 철학 없는 행정

그렇다면 왜 수많은 청년들은 가짜뉴스에 호도된 것일까? 필자는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의 원칙과 철학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017년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1년 중 9개월 이상 지속되고 2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일자리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정하였으나 인천국제공항은 여기서 다소 후퇴한 ‘자회사를 통한 직접 고용’을 추진하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가이드라인에 ‘국민의 생명?안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는 직접고용이 원칙’이라고 명시한 동시에 ‘생명?안전 업무의 구체적 범위는 기관별 노사 및 전문가 협의, 다른 기관의 사례, 업무 특성 등을 참조하여 기관에서 결정’하도록 해 직접고용 원칙의 예외가 생길 가능성을 터놓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천국제공항의 보안검색요원들은 공항에 직접고용 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으나 ‘보안경비요원’들은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를 통해 고용되는 것으로 결정된 것도 이런 예외를 이용한 결과이다.
게다가 이번에 정규직화 대상인 1902명 중 2017년 5월 12일 이후 입사한 833명은 공개경쟁채용 대상이라 전원이 정규직화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역시 고용안정을 위한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인데, 이런 방침은 2018년 12월 인천국제공항 제2기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결정되었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이 서울교통공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력 중 일부가 임직원들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이를 특혜라고 주장한 것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채용과정에서 불공정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용역회사에서의 채용과정에서 ‘비리가 있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상정하고 노동자끼리 경쟁을 시켜 외려 고용불안을 일으키는 것은 정책의 취지와 전혀 맞지 않다. 실제로 인천국제공항은 소방대원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공개경쟁방식으로 지원한 지원자 59명 중 28명이나 탈락시켰고, 탈락된 이들은 전원 해고됐다.

2018년의 서울교통공사 정규직화 당시 논란도, 작금의 인천국제공항 논란도 수구언론과 야당은 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책 흔들기’에 나섰다. 제대로 된 비판이 아니기에 정부는 충분히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계속 설득, 추진하였어야 했으나 조금씩 후퇴하였다. 흔들리는 정부의 모습을 보며 청년들은 정부의 정규직 일자리 확충 의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을 것이고, ‘모두가 정규직화 될 수는 없다’는 인식과 ‘정규직은 처절하게 획득하여야 하는 신분’이라는 우리 사회 인식을 바꿀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이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나타났을 것이다.

또한 정부는 우리 사회 많은 구성원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지니고 있는 노동의 종류에 대한 혐오, 차별의식을 사라지게 하는 노력을 병행했어야 했다. 많은 시민들은 노동 강도가 강한 직업은 ‘좋지 않은 직업’이며, 안정된 고용과 임금이 보장된 직업은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시험을 치지 않은 직업은 질 낮은 직업’이라는 혐오가 팽배하다. 오늘날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 청년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호하는 공공기관에서의 일자리에 대한 정규직화를 진행할 것이었다면 이런 혐오를 시정하려는 노력도 병행했어야 했다.

이렇듯 확고한 철학도, 원칙도, 이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설득할 능력도 부족한 정부의 태도는 수구세력의 가짜뉴스에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이 맥없이 비난받는 상황을 야기했고, 몇 년 동안 전문력을 쌓아온 수많은 인천국제공항 노동자들이 단순히 필기시험을 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회적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그저 청년들을 훈계하려는 일부 정부 여당 인사들의 태도를 청년들이 이해하길 바라는 것은 조금 염치없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 공정과 혐오를 헷갈리지 말자

그러나 청년들이 비판의 대상을 정규직화를 앞둔 노동자들로 설정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번에 정규직화를 앞둔 보안검색요원들은 몇 년 동안 해당 업무를 수행해온 전문가들인데 이들이 스펙이 없다고, 시험을 치지 않았다고 ‘부적격자’ 취급을 받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이들의 정규직화를 ‘대통령 찬스’, ‘로또 취업’과 같이 폄훼하는
것은 본인을 포함한 노동자 및 취업준비생들의 노동권 신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 6월 29일 미래통합당에서 주최한 ‘인국공 로또취업 성토대회’에 참석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3학년 A씨는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같이)소수에게만 특혜가 부여되는 이런 ‘묻지마 정규직 전환’은 김용균씨도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故김용균씨는 지난 2018년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는 사고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A씨의 발언은 사실관계도 틀렸을 뿐더러 생전에 발전소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요구해왔음에도 바로 그 원하청 노동구조로 인해 희생된 돌아가신 분에 대한 혐오 발언이다. A씨와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서 공부한 사람으로서 해당 발언에 대해 매우 부끄럽고 故김용균씨의 유족과 발전소 노동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참고로 김용균씨의 사망 이후 정부 여당은 발전소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후속대책의 미비로 아직까지도 수많은 발전소 노동자들이 ‘알바노동’을 지속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대우’나 ‘지속적으로 필요한 일자리에 대한 고용안정’이라는 당연한 원칙이 여전히 확립되지 않은, 심지어 ‘공정’이라는 잣대 하에 ‘을-을 간의 경쟁’이 펼쳐지는 작금의 현실이, ‘공정’과 ‘혐오’를 많이들 헷갈려하는 작금의 현실이 우리 사회 수많은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필자로서는 그저 씁쓸할 뿐이다.


※ 홍용희 님은 페미니즘과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은 대학원 진학준비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