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28 17:00
[140호] 시선 둘 - 고교생 노동인권 실태조사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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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사무국
조회 : 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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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노동인권 실태조사 환영
배미란
사람들은 십 대와 이십 대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십 대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대체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어른들 말씀을 잘 듣고, 정해진 일과에 맞춰서 생활해야 하며, 어쭙잖은 아르바이트를 하기보다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게 정답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나이 한두 살을 더 먹고, 이십 대 초반이 되면,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진다. 가까운 예로 대학을 선택해야 할 때가 되면 졸업 후에 취업이 잘 되는지, 적어도 취업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가 관건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 자립하는 방법쯤은 스스로 터득해야 하며, 이른바 사회에서 좋은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에 취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 일의 소중함이나 그 가치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돈 벌 궁리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얘기만 듣고 자라온 아이들이 불과 한두 살 더 먹었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직업을 가지고, 노동을 통해 스스로의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일인지를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학교가 아이들에게 삶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며 그 인격을 만들어 나가는 곳이라면, 삶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일의 소중함과 노동을 다루는 법과 규율에 대한 이해는 당연히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울산시교육청이 진행하고 있는 고교생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대해 환영하는 바이다. 울산시교육청은 울산지역 전체 58개 고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지난 12일부터 19일까지 온라인 설문을 통해 고교생의 아르바이트 실태와 노동인권 침해 현황을 조사하였고, 이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용 노동인권 교육 프로그램 및 교육자료 개발 등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특히, 청소년의 노동인권 현황을 조사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대응을 하는 것은 청소년 보호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하는 청소년을 알바나 실습생이라고 부르면서 그저 공부는 안 하고 딴 짓이나 하는 아이로 바라보고 있는 동안, 아니면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없는 예비 노동자 또는 보조적인 존재로 치부하고 있는 동안, 청소년들의 노동 현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위험해 지고 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집필한 ‘십 대 밑바닥 노동’에서는 청소년 노동에 대한 대표 키워드로서 착취, 모욕, 위험, 불안, 배제, 이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즉, 청소년의 노동은 미성숙이란 이름 아래, 그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지급받지 못하기도 하고, 때로는 적절한 대가나 권리를 주장하면 오히려 미성숙한 이를 고용해 준 사람에게 배은망덕하다는 식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더하여 전 사회적으로 노동시장이 열악해지고 있는 탓에, 청소년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도 점차 스마트폰 조작 몇 번으로 구할 수 있는 플랫폼 노동이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임시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노동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 앞에 자신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도, 어떤 이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둘 수만은 없는 것이다.
재차 말하지만, 이런 이유로 고교생 전원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노동인권 실태조사 실시를 환영한다. 이에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실태조사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노동인권 교육에서는 청소년의 권익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법률 교육 외에도, 그 토대로서 청소년들이 노동의 참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도 함께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즉, 단지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의 노동이 얼마나 다양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은 이십 대의 문턱 앞에선 청소년들을 더 한층 성장하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조사는 학교 안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지만, 향후에는 학교 안 청소년만큼이나 소중한 학교 밖 청소년의 노동인권 실태조사도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배미란 님은 울산대 법학과 교수이며,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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