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7-31 19:33
[139호] 인권포커스 -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은 노동자의 인권과 생명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5,147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은 노동자의 인권과 생명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김재인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라’ ‘중대재해 기업을 처벌하라’ 중대재해 발생 기업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18년 12월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故김영균씨 사망사고 이후 2020년 1월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개정됐다. 양형규정에 가중처벌조항 등이 일부 강화되었으나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으로는 사망사고와 관련한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중대재해란 화학공장의 폭발, 건설공사에서의 추락, 붕괴사고 등과 같이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일시에 다수의 사상자를 유발하는 재해를 말한다. 그러나 기업과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에 투자되는 비용보다 여전히 낮은 벌금과 가벼운 처벌이 오히려 경제적 이득이라는 판단이 앞서기 때문이다.

올해만도 울산에서는 6월말 현재 14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현대중공업에서만 5건의 중대재해가 발생, 3명의 외주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희생됐다. 지난 4월 29일 38명의 희생자를 낸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산업재해의 가장 큰 희생자는 임시?일용직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중대재해에 대해 사업주에 대한 법적 책임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어 중대재해는 끊이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 모는 위험업무 외주화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2018년 발표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판결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1,714건의 산업재해 판결 중 산안법 위반의 재범률은 97%로 나타났다, 일반범죄 재범률 43%의 2배를 훨씬 넘는 수치다. 2017년 기준 산안법 위반 전과 4범은 153명, 전과 9범 이상은 105명이다. 산재 범죄가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처벌은 미미했다. 2017년 처리된 산안법 위반 관련사건 13,187건중 정식 재판에 넘겨진 경우는 613건(4.64%)에 불과했다. 사업주와 책임자가 구속 수사를 받은 사건은 1건(0.007%)에 그쳤다. 전체 사건의 82.9%가 벌금 약식명령 청구로 종결됐다. 지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4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실제 사업주와 관계자들 대부분 집행유예 판결에 벌금 2천만 원이 고작이다.

산업안전을 소홀히 한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는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는 일터의 죽음과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희생을 막을 수 없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법 강화와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중대재해 사업장과 사업주에 대한 강력한 법적 형사처벌 만이 산업현장의 사망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대 국회에 이어 2018년 故노회찬 의원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발의, 주장했으나 20대 국회 때 논의조차 제대로 못한 채 자동 폐기됐다.

반면 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 호주의 ‘산업살인법’, 캐나다의 ‘단체의 형사책임법’ 등 이미 선진국에서는 위험한 작업을 통해 이익을 얻는 기업에게 엄중한 책임을 부과함으로서 중대재해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고 노동자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법을 시행하고 있다.

다행히 21대 국회 들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여론과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6월 11일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중대재해 사망사고 시 원청을 비롯한 기업법인과 최고책임자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며 이를 위해 처벌의 하한형을 두는 등 중대재해로 부터 노동자의 생명보호와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담고 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도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경우 직접고용 하도록 하는 일명 ‘구의역 재발방지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 7월 15일 국회에서는 ‘생명안전을 위한 기업책임 강화제도 도입’ 토론회가 개최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주축인 생명안전포럼이 주최한 토론회는 21대 여야 국회의원 26명이 생명안전우선 사회를 만들겠다며 국회 내 모임을 결성했다. 노동계를 포함한 17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등도 21대 국회 개원에 맞춰 ‘중대재해 기업처벌 관련 법률(안)’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도 지난 7월 13일 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가 아니더라도 사업주의 전반적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에 대해 양형 기준을 독립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마련하고 있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입법안의 주요 내용은 △기업의 최고 책임자와 원청 책임자의 처벌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형식적인 책임자가 있다는 이유로 기업의 실질적인 경영책임자는 처벌에서 제외되거나 법망을 빠져 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영 책임자’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자’로 정함으로써 실질적인 책임주체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명문화하고 사업장에 대한 벌금도 강화하자는 것이다. 사내하청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다단계 하청노동자들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위험의 외주화가 다단계로 이루어지는 도급, 위탁의 경우에도 그 형식을 불문하고 실질적인 사용자가 처벌받을 수 있도록 했다. 중대재해 발생관련 행정책임자 공무원의 관리감독 책임과 처벌을 명문화하는 것 등을 포함하고 있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은 법안의 명칭이 알려주듯 중대 산업재해를 발생하게 한 기업 및 대표자를 강력히 처벌하고 위험 업무의 직접고용을 통해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권을 지켜내자는 것이다.
더 이상 노동자들을 중대재해의 죽음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최고책임자가 최소한의 법을 준수하기 위한 비용이나 인력에 대한 안전투자는커녕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만 요구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해마나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 위험한 작업을 노동자에게 맡겨 이익을 얻는 기업과 사업주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기계보다 사람 목숨이 더 귀하다는 인식, 중대재해는 범죄라는 인식, 산업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면 법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처벌받을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 그 해결방안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뿐이다.

※ 김재인 님은 한국노총울산지역본부 정책기획실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