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4-28 17:21
[136호] 인권포커스Ⅱ - 여성계에서 바라본 n번방 사건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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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에서 바라본 n번방 사건

손해연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2019년 2월부터 수십여 명의 여성들을 협박하여 성착취 영상을 찍게 해 이 영상을 텔레그램을 통해 판매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이후 2020년 3월 19일 운영자 중에서도 가장 악랄했던 ‘박사’(25세, 조주빈)가 구속됐고 공범도 함께 검거되면서 언론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여성피해자 74명중 16명이 미성년자이며, 대화방 참가자가 무려 26만 명에 달했고, ‘박사’가 운영하는 대화방에는 최대 1만 명이 참여하는 등 수많은 동조자와 ‘관전자’들이 존재했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가입한 회원들은 30만원에서 150만원까지 회비를 내고 이 영상에 참여했다고 하니 우리 사회의 성문화와 남성문화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볼 수 있는 사건이다.

‘박사’는 청소년·여성들을 유인해 신상정보를 받아낸 뒤 가족과 지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며 여성들이 저항할 수 없게 한 다음 성착취(폭력, 학대 등) 사진과 동영상을 찍게 했다. 피해자의 이름, 얼굴, 나이, 학교, 직장, 사는 곳까지 공개하여, 이 피해 여성들이 실제로 성폭행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고, 이때 찍힌 강간영상, 성폭행 영상은 즉시 텔레그램에 공유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악질범죄를 저질렀다.

또한 ‘박사’가 붙잡히는 날에도 트위터에는 “n번방 영상 푸는 계정”, “n번방 처벌 회피해드린다”는 등의 글이 잇따랐다. 여전히 법망을 피해 갈 수 있다고 보는 가담자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렇듯 ‘박사’의 악랄한 범죄를 존재하게 한 이면에는 수많은 동조하는 남성들이 존재했고, 이들을 등에 업은 ‘박사’는 끊임없이 활개 치며 성착취를 서슴없이 행했다. 경찰의 텔레그램 n번방 수사가 진행되자 가해자들은 다른 메신저로 장소를 바꿔 성착취물을 또다시 공유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성착취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살인 범죄’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사실 이 문제는 몇 년 전부터 젊은 페미니스트들과 여성단체들이 끊임없이 제기해온 디지털 성폭력의 문제다.
디지털 성폭력을 남성들의 놀이 문화로 만들고 부를 축적한 소라넷 운영자와 이용자들,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성폭력을 모의하고 공유하던 정준영과 친구들, 웹하드 카르텔로 디지털 성폭력 강국을 만들고 부를 축적한 양진호와 친구들, 국경을 넘나들며 아동성폭력 제작과 유포로 부를 축적한 다크웹 운영자 손정우, 톡방에서 연예인 지망생 여성들 성착취 모의하던 남성연예인들, 텔레그램 N번방을 만들어 성폭력을 조장하고 이를 유포하여 부를 축적한 갓갓, 왓치맨, 박사와 공범자들. 그리고 26만 명의 또 다른 공범자들 …….

여성이 동등한 인간이라기보다는 간편하게 성적 욕구를 배설할 수 있는 도구로 보고, 기본적인 인간성이 상실된 영상물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주고받아지고 거기에서 이윤이 생산되는 사회는 종식시켜야 한다.

지난 기간, 여성들의 처절한 투쟁으로 의제강간 연령 상향(13세→16세)으로 그동안 합의하 관계라며 처벌을 피해왔던 미성년자 강간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게 되었고, 강간죄를 계획하고 모의하는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고, 스토킹 처벌법 신설추진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를 종식하고자 하는 수사당국의 강력한 의지, 국회의 법 제?개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텔레그램 n번방’은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성들 속에서 오랫동안 있어왔던 그 성문화를 문제라고 인식하고 자정능력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란 통탄이다. 모든 남성이 직접적인 가해자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남성의 성문화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묵인할 때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 찍은 자, 봤던 자, 올린 자. 모두가 공범이다!



※ 손해연 님은 울산여성회 성평등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