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물결, 세계의 파도
신주연
지난 6월, 1년 동안 준비해온 청소년의회 조례가 철회되었다. 조례 준비에는 10명이 넘는 청소년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준비위원회로 함께하였는데, 반대 측이 꽤 규모가 크고 조직적이었던 탓인지 긴 후유증을 겪고 있다.
3월에 있었던 청소년의회 조례 공청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두 명의 다른 청소년들 함께 공청회장에 들어선 순간 보았던 공청회장을 가득 채운 반대 측의 피켓들이 기억난다. 반대 측 참석자들은 공청회를 시작한 이후부터 대화를 거부한 채 반복해서 구호를 외치고 강단 앞으로 몰려나와 공청회를 방해했다. 준비해온 대본을 읽는 동안에도 함성 소리가 그치지 않아 내 목소리가 나에게도 들리지 않았고, 마이크를 빼앗거나 나를 끌어내리려고 어깨나 팔을 잡아채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 분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무사히 발제를 마칠 수 있었지만 몇 달 동안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청소년의회 준비위원회로 활동하며 가장 무기력해지는 순간은 비정상적인 논리로 조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청소년을 만나는 ‘어른’들이라는 것이었다. 2월에 있었던 교육 상임위 회의 때 만났던 반대 ‘어른’들의 직업은 청소년 상담사, 학교 선생님, 청소년 지도사 등 청소년들을 만나거나 청소년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매일 청소년을 마주하는 ‘어른’들이 이렇게 무지할 수 있는 건지, ‘어른’들의 인식 속 청소년은 어떤 존재인지 우리는 자주 생각하고 고민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태어난 후부터 법적 성인이 될 때까지 약 20년 간 통제된 환경 속에서 통제하기 좋은 행동만을 강요받는다. 청소년이 감히 정치를 논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사회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들이 법적 성인인 20살이 되는 순간 정치에 관심을 갖고, 나라의 발전에 힘이 되는 민주 시민으로 거듭나야 하는 폭력적인 구조 속에서 희생되는 것은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의 청소년이다. 대다수의 ‘어른’들과 ‘어른’이 된 과거의 청소년들은 그저 방관하는 것이다.
이번 청소년의회 조례를 둘러싼 마찰을 겪으며 아직 우리 사회의 비청소년들에게 청소년의 목소리는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된다면 더 수준 높은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형성될 수 있을지, 청소년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청소년은 하나의 완전한 주체로서 자신과 관련된 의사결정 및 의사표현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그러한 의사결정과 의사 표현의 과정 중 일부이며, 이는 결코 비청소년들의 전유물일 수 없다. 많은 정책들이 청소년의 삶에 영향을 미치거나 제한을 가하고 있고, 이러한 정책 수립 이전에 실행의 대상이 될 청소년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은 필수적이지만 입시 정책을 생각해보더라도 당사자가 될 청소년의 의견보다는 학부모와 비청소년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고, 이들의 의견이 입시 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공청회에 참석한 ‘나쁜 어른’들을 비난하기 전에 스스로 청소년을 미성숙한 대상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여러 시민사회의 도움이 있었지만 청소년의회 조례의 후유증은 오롯이 청소년의회를, 자신의 주체적인 의사 표현을 지지한 청소년들이 감수하여야 했다.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주제넘게 정치를 논한 청소년들은 공청회장의 기억을, 그럴 줄 알았다는 말들을, 학교가 주는 불이익을 겪어내는 중이다. 청소년의회 준비위에서 정한 청소년의회의 슬로건은 ‘우리의 물결, 세계의 파도’이다. 슬로건처럼 울산을 넘어 모두에게 우리의 목소리가 닿기를 바라며, 한 사람의 생각과 목소리가 수채화 물감처럼 퍼져 언젠가는 어디서나 청소년들과 비청소년들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 신주연 님은 울산청소년인권모임 ‘teenrights’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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