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7-30 08:30
[127호] 시선 하나 - 결혼이민자와 함께한 10년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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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민자와 함께한 10년

나성자



결혼이민자 여성에게 한국어 교육을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처음 한국어 교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쉼터에 피신해 와있는 21살 베트남 여성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때 나는 쉼터에서 수지침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예쁘고 눈치 빠른 그 베트남 여성은 한국어를 못해서 답답하다는 이유로 시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해 쉼터에 오게 되었다. 그 결혼이민자를 보면서 내가 한국어 교사가 된다면 저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 싶어 한국어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문화 가정을 방문하여 결혼이민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국어 이외의 한국문화, 한국의 생활이나 자녀 양육에 대한 교육도 하고 있다.

결혼이민자 그녀들이 한국에 오게 된 사연은 사람마다 다르다. 서로 사랑해서 오게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집안의 경제를 생각해서 효도하기 위해 오기도 한다. 자신이 한국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 와서 아이를 갖게 되면 친정 부모님을 초청할 수 있다. 부모님이 한국에 와서 4년 10개월 동안 일을 하면 본인의 나라에서는 만지기 힘든 큰돈을 벌어 빚을 갚기도 하고 집을 사거나 부유하게 살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의 딸들이 그랬듯이 그녀들도 자신을 희생해서 가족들이 잘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이 땅에 온다.

하지만 그녀들이 이 땅에 와서 살아가는 것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일제 강점기 때 이야기를 하며 지나치게 아끼며 그때와 비교하는 시어머니.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사사건건 무시하는 시어머니. 전처 자녀와의 갈등, 시댁 식구들의 간섭 등등 낯선 곳에 시집와서 살아내야 하는 그녀들에게 만만한 환경은 없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좀 치사할 것 같은 작은 갈등부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나이 차이만큼이나 큰 갈등까지 무수히 많은 문제들을 안고 살고 있다. 하지만 나이 어린 그녀들은 때로는 외면하고 때로는 부딪치며 그 상황을 잘 이겨내며 용감하게 살고 있다.

이번에 문제(베트남 결혼이주여성 폭행 사건)를 일으킨 남편처럼 다문화 가정의 남편들이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내가 본 대상자 남편은 아이가 둘인데도 아이의 양육보다는 아내가 직장생활로 돈을 벌어오기를 강요하고 친정에는 기본적인 인사치레도 못하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내는 남편이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또 어떤 남편은 자신이 나이가 많으니까 무조건 아내가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한다며 아내가 고집이 너무 세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한국인끼리도 각 집안마다 문화 차이가 있는데 하물며 다른 나라에서 온 아내와의 문화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다문화 단체에서는 문화 차이 극복을 위한 교육과 부부교육을 하고 있는데 문제가 많은 남편들일수록 또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참여율이 저조하다. 다문화 가정을 이루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결혼 이후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생각한 후에 결혼을 결정해야 하는데 미처 그 부분은 생각을 못하고 결정하는 것 같다. 상담을 하다보면 각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들이 얽혀있어 해법이 보이질 않는다.

결혼이민자 그녀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다문화 가정이 이런 폭력에 노출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만난 결혼이민자는 자신이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자신의 나라에서 희망 없이 살고 있을 텐데 한국에 와서 자신의 꿈이 생겼고 그 꿈을 향해 살아가는 자신이 대견하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정말 고맙다고 했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국적을 취득하고 바리스타 자격증. 제빵 자격증. 한식자격증 등등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하면서 미래를 꿈꾸고 있다. 또 다른 결혼이민자는 방송통신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하고 무역회사에 취직해서 자신의 꿈도 이루고 양국 간의 무역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그녀들이 꿈을 이루어 가는 데는 남편의 도움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이번에 다문화가정에서 일어난 베트남 여성의 남편 폭력사건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 가정보다는 다문화가정의 상황이 열악하고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인 가정보다 더 사이좋게 모범적으로 사는 가정도 많은데 마치 모든 다문화 가정이 폭력에 노출돼있는 것처럼 언론이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언론 보도를 본 한 결혼이민자는 한국 사람은 화가 나면 다 아내를 때리는지 물어보았다.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했지만 이번 언론 보도가 다문화 가정이라는 것에 너무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나성자 님은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한국어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