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1-01 16:33
[130호] 이달의 인권도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저 / 창비 2019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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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승섭 저 / 창비 2019 / 정리 : 오문완



이 책은 우리는 ‘선량하지만 차별주의자이다(차별주의자일 수 있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 명제에서 벗어나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차별에 항거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 책의 프롤로그 ‘당신은 차별이 보이나요?’에도 소개되는 대목인데 저자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겨레 신문의인터뷰기사-우리모두선량한데차별은왜생기나.)
“3년 전, 혐오표현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서 제가 우리 사회의 ‘결정장애’라는 말을 했는데, 나중에 참석자 중 한 분이 ‘왜 그런 말을 썼어요?’ 하고 물으시더군요. 저는 인권을 공부했고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차별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충격이 컸습니다. 그래서 연구를 하기로 했죠.”

책은 3부로 나누인다. 1부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차별을 하게 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2부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에서는 그 차별이 어떻게 내면화하고 차별하지 않는다고 자기 세뇌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3부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에서는 차별하지 않는 선량한 비(非)차별주의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10장)는 것으로 논의를 정리한다.

“한국인 다 되었네요.”
이주민들은 한국인이 ‘다 되었다’는 말에 자신이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살아도 우리는 당신을 온전히 한국인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에 모욕적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굳이 한국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왜 한국인이 된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 제기였다. 한국인이 아니라고 하거나, 한국인 중심으로 생각하거나, 어느 쪽이든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희망을 가지세요.”
장애인에게 하는 ‘희망을 가지라’는 말 역시 전제 때문에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희망을 가지라는 건 현재의 삶에 희망이 없음을 전제로 한다. 장애인이 희망을 가져야 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변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말과 생각들을 하나하나 훑는 작업은 마치 세상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정말 평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한다는 건 나의 무의식까지 훑어보는 작업을 거친 후에야 조금이나마 가능해질 것 같았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는 일 말이다.(10쪽)

법학에서는 평등의 원칙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는 얘기가(미국 얘기라 거시기하기는 한데) 1954년 브라운 판결(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이다. 이 판결은 흑인학교 백인학교로 분리해도 교사(의 질)나 교육 내용이 같다면 “분리하지만 평등”(seperate but equal)이라는 원칙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결정한다. 분리된 학교 시설은 본질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seperate not equal) 여기까지는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인데, 저자는 이 판결의 배경에 있는 1947년 인형 실험(Dolls Test)을 소개하는 미덕을 발휘한다. 흑인 어린이들한테 백인 인형과 유색인 인형을 보여줄 때 어느 쪽을 좋아할까 하는 실험이다. 결과는 다들 아실 것으로 믿는다.(모르시는 분은 책을 보시고. 77쪽) 문제는 마지막 질문에 있었다. “자기랑 닮은 인형은 어느 것인가요?” 이 질문에 몇몇 어린이가 울음을 터뜨렸는데 스스로를 부정했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어느 아이는 이렇게 자기변명을 했단다. “제가 얼굴이 타서 엉망이 되었어요.”(굳이 사족을 하나 단다면, 백인도 유색인이다. 하얀색도 색이라는 이야기. 색이 없으면 투명인간이 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간접차별(indirect discrimination)의 예를 보여주기도 한다. 2010년 대학 졸업을 앞둔 한 청각장애인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그는 한 회사의 신입사원 채용 자격기준에서 토익 600점 이상 또는 그에 해당하는 영어 성적을 요구한 것이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소개한다. 자신이 유학을 한 미국 대학에서는 비영어권에서 온 학생들에게 입학 후 일정 기간 동안 시험시간을 더 주는 정책이 있었다고....

이성애자가 하는 “동성애자가 싫다”는 말은 동성애자가 하는 “이성애자가 싫다”는 말과 같지 않다. 마찬가지로 비장애인이 하는 “장애인이 싫다”는 말은 장애인이 하는 “비장애인이 싫다”는 말과 같지 않으며, 국민이 하는 “난민이 싫다”는 말은 난민이 하는 “국민이 싫다”는 말과 같지 않다.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주체 사이의 권력 관계가 그 말의 의미와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수자와 소수자의 자유는 같지 않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 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의는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누가 혹은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은 아직 충분히 정의롭지 않고, 부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은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이라는 해법을 소개한다. 이미 헌법 제11조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이 당사국으로 가입해 지킬 의무가 있는 국제인권조약들에서도 차별을 금지한다. 평등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민주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원천이며, 누구든지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요구는 현대사회의 근본적인 규범이다.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헌법과 국제인권법의 원칙이 실현되도록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법률로써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자발적인 문화개선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법적 규범이 없이 실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보편적으로 모든 차별을 금지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차별이 존재하는지 모이게 만들기 위해 차별금지사유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이해관계의 경합에서 다수가 승리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집단 간의 합의가 아니라 인권과 정의의 원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동의는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기본원칙에 대한 것이어야 하지, 누군가를 차별해야 한다는 다수의 주장을 수용해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의 원칙은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