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 네 모녀에게 기본소득을
이승진
2019년 11월 2일. 서울 성북구의 한 다가구주택. 70대 어머니와 40대 세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지 한 달여, 그것도 공사업자에게 발견된 네 모녀.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때 마다 앞서 세상을 떠난 송파 세 모녀는 여지없이 소환된다. 세상을 떠나야 주목받는 사람들. 송파 세 모녀는 죽음의 문턱에서 성북 네 모녀를 마중하러 나왔을까? 본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5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은 여전한지 물어 보았을까?
송파 세 모녀가 떠나고 나서 구축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은 왜 성북 네 모녀에게 적용되지 않았을까? 국민건강보험료 체납, 단전?단수, 가스 공급 중단 등 29개 지표를 이용해서 위기가구를 찾아내는 이 시스템은 왜 무용지물이 됐을까? 공과금이 3개월 이상 체납되면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을 통해 해당 구청에 통보되지만 네 모녀 가구는 체납 기간이 2개월이었다.
어머니와 둘째 딸의 건강보험료는 3개월째 체납됐다. 셋째 딸이 사업자로 등록하고 첫째 딸과 함께 운영하던 쇼핑몰 역시 3개월째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했다. 보증금 3000만 원에 월 100만 원의 14평 다세대 주택 월세도 3개월째 내지 못했다. 우편함에는 은행과 카드사, 신용정보회사 등에서 보낸 채무 이행 통지서가 20통 가까이 쌓여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자영업자와 가족들의 몰락은 이렇게 매듭지어졌다.
경제적 상황이 급격히 악화돼서 시장논리로 대응할 수 없을 때.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절차를 밟을 수도 있었다. 이를 지원해줄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급여법 등 이른바 ‘송파 세 모녀법’을 통해 지원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현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있고, 내년부터 수급자의 재산 기준도 완화하기로 했다. 늦었지만.
그럼에도 네 모녀는 선별적 복지를 요청하지 않았다. 몰랐을 수도 있고, 알고 있지만 신청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가스 검침원에게 가스요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묻거나,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기초연금 계좌를 행복지킴이 통장(압류 방지 통장)으로 변경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 한 정황을 살펴보면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국가 공인 빈곤층’이라는 낙인감을 받아들일 수 없었거나. 이처럼 선별적 복지는 아무리 확대해도 ‘그 만큼’의 사각지대가 다시 늘어나게 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저 세상에서 쉬고 있는 송파 세 모녀를 매번 소환할 일이 아니라 '기본소득'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브라질과 미국의 알래스카, 핀란드,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등 지구촌 수많은 국가들이 기본소득 제도를 실험하고 있다. 기본소득이 있다고 ‘게을러지거나 일하지 않는다’는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의 상상 속 부정적인 입장에서만 존재한다. 오히려 일하면 일 할수록 더 가난해지는 대한민국의 역설을 이젠 멈춰야 한다.
경기도와 서울에서는 이미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거주지만 확인이 되면 한시적이긴 해도 모든 청년에게 조건 없이 지급한다. 그렇다고 해서 경기도와 서울 청년들이 기본소득이 없는 울산지역 청년들보다 게으르고 나태해졌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과도한 노동을 줄이고, 더 많은 시도를 하고, 더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기본소득을 통해 ‘가정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조화롭게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안전한 마을을 꿈꿀 수도 있다. 적어도 생계형 범죄나 일가족의 자살은 대폭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범죄와 자살이 줄어들면 누구에게 가장 큰 이득일까?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과 가족들에게 가장 큰 이득이다.
자. 이제 남은 과제는 재원 확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할까. 그렇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먼저 내 몸과 주변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친다는 이유로 거두는 징벌적 성격의 담뱃세와 주세처럼 '탄소세'를 거두면 된다. 담배연기와 알코올에는 세금을 매기면서 수많은 탄소를 내뿜는 ‘문명의 이기’들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많은 이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 탄소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사실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다음은 기업이 대가없이 독점하고 있는 개인정보마다 세금을 부과하면 된다. ‘가상의 석유’라고 불리는 개인정보에 세금을 부과하자. 왜 여러분들은 기업의 ‘동의 요구’에 응하기만 하는가? 내 정보에 세금을 부과하자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합당한 요구다. 개인정보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현실도 가만히 따져보면 이상한 노릇이다.
요즘은 공장과 고속도로, 주차장, 대형마트, 프랜차이즈 식당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고 말고 할 것 없이 기본소득을 받고 자신의 삶을 누리면 된다. 대신 사람이 사라진 현장의 시스템과 로봇에 세금을 부과하면 될 일이다. 이미 EU 의회는 2017년 1월 로봇에 대해 ‘전자 인간(electronic personhood)’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제안은 놀랍게도 빌 게이츠의 입에서도 나왔다. 로봇의 증가와 인간의 실업 증가 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로봇세’ 부과를 제안했다. 빌 게이츠는 쿼츠(Quartz)와의 인터뷰에서 “로봇세를 받아서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재교육뿐 아니라 보호가 필요한 노인과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에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회적 책임’은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 성북 네 모녀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자.
※ 이승진 님은 (사)나은내일연구소 상임이사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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