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공표죄’와 ‘제대로’알권리
배미란
거의 매일같이 형법전을 들여다보고 살고 있음에도, 언론에서 ‘피의사실공표죄’라는 죄명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낯설고, 아득한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이 역시도 언론을 통해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피의사실공표죄’는 이른바 사문화된 조항이다. 1953년 형법 제정 시에 마련되어 지금껏 유지되어온 조항이나, 그 이후 지금까지 ‘피의사실공표죄’로 형사처벌이 이루어진 경우가 없고, 그러므로 당연히 이에 관한 형사 판례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탓에, 이미 사문화된 조항이니 폐지하여야 한다는 견해도 있고, 나아가 동죄로 인해 보도의 자유나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받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렇다면 과연 ‘피의사실공표죄’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 더 이상 불필요한 죄목인가. 마지막으로 동죄로 인해 국민의 알권리는 침해받는 것인가. 바로 지금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형법 제126조에서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라고 ‘피의사실공표죄’에 관해 정하고 있다. 즉, 현행형법에서는 원칙적으로 검찰이나 경찰과 같은 수사기관이 해당 사건의 공판이 청구되기 전에, 이 사건과 관련된 피의사실을 외부로 알리는 경우에는 처벌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 단순히 생각을 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중요 범죄에 관해서는 국민도 제대로 알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수사기관이 알게 된 피의사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을 왜 처벌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관해 자주 등장하는 답변은 피의사실이 공판 청구 전에 외부에 알려지게 되면 피의자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사생활이 침해되기 때문이라거나, 우리 형사소송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의자는 확정판결을 받을 때까지 무죄추정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언론보도로 인해 유죄의 추정을 받게 되는 등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언론 등에서는 이른바 피의자의 인권이 국민의 알권리보다 중요하냐는 반박이 나오게 되고, ‘피의사실공표죄’ 를 폐지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게 된다.
위의 답변은 옳다. 형법 제정 당시의 입법취지 설명을 보면 피의사실공표죄는 피의자의 신용 및 명예, 즉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마련된 규정이다. 그러나 우리 형법이 ‘피의사실공표죄’를 둔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동죄가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마련된 조항이라면, 우리 형법상 피의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과 같은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장에 마련해 두었어야 하는데, 동죄는 형법상 제7장에서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에 속해 있고, ‘피의사실공표죄’ 이외에도 공무원의 직무유기나, 공무상 비밀의 누설, 뇌물 등과 관련된 조항이 이에 함께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형법 제7장에 속하는 죄를 처벌하는 이유는 공무원이 의무에 위배하거나 직권을 남용하여 국가기능을 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피의사실공표죄’에서는 수사기관이 아직 공판이 청구되지도 않은 사건을 외부에 알리거나 해당사건이 언론 등을 통해 보도된다면, 그에 따라 피의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피하는 등 범죄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고, 여론에 의해 공정한 수사나 재판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의 범죄수사권이라는 국가적 이익을 보호함과 동시에 공정한 국가기능의 수행을 위해, 수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이러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고, 이러한 범죄를 처벌함으로서 부차적으로 피의자의 인권이 함께 보호되는 것이다.
이제 다음의 의문에 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피의사실공표죄’는 폐지되는 게 옳을까. 이 역시도 그렇지 않다. 우리 형법에서 동죄를 정하고 있는 취지나 목적이 분명하고, 위에서 살펴본 원활한 범죄수사나 공정한 재판의 진행, 나아가 피의자의 신용이나 명예의 보장 등과 같은 국가적 내지 개인적 이익을 보호할 필요성이 남아있는 한, ‘피의사실공표죄’는 유지되어야 한다. 또한 여전히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수사기관의 언론브리핑이나 수사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언론보도 등을 접하면서 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피의사실공표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왜 ‘피의사실공표죄’는 이러한 입법취지나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형법 제정 이래 지금까지 사문화되어 온 것일까. 그리고 오직 공공의 이익이나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피의사실을 공표한 공무원을 처벌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동죄가 사문화된 가장 큰 이유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검찰이 수사기관을 피의자로 하는 기소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는 한편으로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나 의도적인 권한 불행사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고, 피의사실을 꽁꽁 싸매고 있다는 오해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현행법 상 불법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판이 청구되지 않은 사건을 외부에 노출시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바로 이른바 국민의 알권리이다.
사실 ‘피의사실공표죄’와 국민의 알권리는 양날의 검이다. 자칫하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중요 범죄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사나 재판에 관한 국가기능이나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형법이 내어놓은 해결책은 바로 ‘공판 청구 전’이다. 오로지 국가기능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되건 말건 관계없이 재판이 끝날 때까지 피의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겠다는 것이 아니라, 원활하고 공정한 수사를 위해 수사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의 공표는 해당사건의 공판이 청구된 이후로 하고, 공소의 제기와 함께 온 국민 앞에 정확하게 정리된 사실을 공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개적이고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취지이다.
나아가 이러한 우리 형법의 태도는 국민의 ‘제대로’ 알권리라는 측면에서도 유의미하다. 즉, 수사과정에서 수집되는 증거에는 불명확한 내용의 것도 있고, 잘못된 정보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자료 중에서 공판 준비를 위해 검토에 검토를 거치면서 불순물이 제거된 증거와 그를 바탕으로 한 피의사실이야말로 우리 국민에게 알려져야 할 피의사실인 것이지, 보다 전단계에서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제대로’ 된 알권리를 침해받게 된다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생각건대, 공판 청구 전에 특정 사건의 피의사실을 알게 되면 국민의 알권리는 충족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제대로’ 알권리는 침해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부득이하게 피의사실을 공표한 공무원의 행위는 비록 동죄에는 해당하지만, 업무상 또는 우리 사회상규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이유로 위법성이 부정되어 처벌되지 않으므로, 동죄를 유지하는 것이 수사기관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마지막으로, 피의사실 공표는 주로 정치적 사건을 예로 들어 생각하기 쉬운데, 대신 살인죄나 강간죄 등과 같이 이른바 언론보도 등을 통해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사건도 예로 들어 생각해 봐 주시길 바란다. 과연 그러한 사건에서 피해자는 피의사실의 공표를 원할 것인지, 그리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피해자의 권한 침해나 2차 피해의 발생은 용인되어도 좋은지 말이다.
※ 배미란 님은 울산대 법학과 교수이며,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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