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2-04 10:35
[119호] 여는 글 - 난민들에게 평화와 자비의 친구가 될 수 있는가?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6,358  

난민들에게 평화와 자비의 친구가 될 수 있는가?

한기양


10월 17일, 법무부는 458명의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에 대한 심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중 339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 34명은 불인정, 85명은 보류 결과를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난민으로 인정된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0명입니다. 예멘 난민신청자 A가 받은 ‘난민불인정 결정통지서'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수록돼 있다고 합니다.

“난민법상 난민인정요건을 충족하지 않으나, 인도적 측면을 고려하여 ‘인도적 체류자'로 결정. 신청자는 국제회의 자원봉사로 일한 이유로 후티반군의 위협이 있어서 신청. 하지만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하지 않음. 하지만 내전이 장기화하여 귀국 시 생명과 신체에 현실적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인도적 체류를 허가함.”

우리 사회에서는 예멘인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이 많습니다.
예멘, 아랍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땅, 90%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가 내전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3000만의 인구 중 1200만 여명이 절대 기아 속에 있습니다. 콜레라가 퍼져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고 2015년 이후 10,000여명이 희생됐습니다. 유엔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예멘은 현존하는 지구상의 가장 처절한 지옥입니다. 본래 내전은 난민의 필요충분조건이라 유엔에서는 난민을 정의합니다.
하지만 이번 예멘 내전으로 인해 입국한 예멘인들에 대한 정부의 처사는 응당 문제가 있습니다. 앞으로 전향적 조처가 필요하고 이들의 제도적 지위인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수구 개신교의 무슬림과 난민에 대한 혐오 프로파간다입니다. ‘에스라기도운동’단체가 주도한 난민혐오는 지난여름 정점을 찍었습니다. 난민과 무슬림에 대한 혐오가 도를 넘어 집단적 광기로 한국개신교 교회를 몰아갔습니다. 아직도 그 위력은 맹렬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제주에 온 예멘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나라가 정상화돼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랍니다. 부모형제와 아내와 자식을 모두 남겨둔 채 동방의 끝자락까지 밀려온 이유는 내전 때문입니다. 내전을 통해 나라가 멈췄고, 경제·정치·종교·교육·의료 등 모든 사회적 기능이 마비된 상황에서 정부군과 반군의 전장에 끌려 나가 죽는 것을 이들은 원치 않았습니다. 가족들의 일용할 양식을 이국땅에서 모아 보내려고 온 것, 이유는 간명했습니다. 이러한 사유가 난민 사유에 들어가지 않아 난민불인정 통지를 받은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자신이 출생한 나라를 벗어나 타국에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일은 ‘체류허가'입니다. 이번에 난민신청을 한 예멘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임계에서 탈출한 이들입니다. 어디든 은신을 하면서 생을 이어가고 고향에 있는 이들의 양식을 벌기 위해 나온 이들입니다.
문제는 체류허가입니다. 한국에는 이렇게 자신의 국적국에서 공포나 박해 위험으로 벗어나 난민신청을 한 이들이 1994년부터 2018년까지 4만2009명에 이릅니다. 그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들은 고작 849명(4.0%)입니다. A처럼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이들은 1540명(7.6%)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철저히 ‘국외자' ‘비존재'로 살아갑니다. 현재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들의 삶도 여러 제약으로 인해 참담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난민인정자의 처우가 이럴진대, 난민불인정자인 인도적 체류자나 재심을 위한 소송단계에 있는 이들의 삶은 어떠합니까.

이번에 인도적 체류자로 통보받은 이들은 339명인데, 이들은 취업허가만 받았을 뿐 지역의료보험을 포함해 4대 보험에서 제외됩니다. 일부 교육받을 권리, 자유로이 여행할 권리 등 모든 사회적 권리에서 배제된 채 살아가야 합니다. ‘비인간적'으로 체류한다는 말입니다. 1년마다 재심사를 받고 상황 변화에 따라 자국으로 송환돼야 하기에 불안정하게 ‘견디어내는' 삶이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34명의 단순 불인정 통보를 받은 이들은 어떤 상황이겠습니까. 이들은 차후 잠정적으로 강제송환 대상자들입니다. 아직 결정되지 않고 보류상태에 있는 이들을 포함해, 이들에 대한 심사결과는 너무 가혹합니다. 정부는 난민협약과 국제인권법을 준수할 책임이 있습니다. 34명의 불인정을 철회하고 난민지원제도를 전격적으로 정비해 말로만의 인도적 체류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으로 난민을 ‘보호'하려는 제도개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사회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70여 년의 분단의 장벽을 제거하고 평화와 화해의 프로세스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에서 평화는 자비의 마음과 동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자어 사랑 ‘자(慈)'와 슬플 ‘비(悲)'의 정신은 곧, 약자에 대한 긍휼과 공감으로 인해 하나 되는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서울의 한 중학교 어린 학생들에게서 다시금 희망과 생명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난민신청에서 탈락돼 추방위기에 놓인 친구들의 변호사로 나선 어린 학생들의 마음은 다름 아닌 자비한 마음이었습니다. 촛불혁명이 정의의 투쟁이었다면, 이제는 약자의 슬픔에 마음이 하나 되는 자비의 행진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의와 자비는 대치되지 않습니다.
평화는 자비의 능선을 넘지 않으면 안 되는 곡선의 모양을 띠고 있으며,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세워지는 법입니다. 난민으로 온 무국적자들의 처지와 공감하는 문화를 확산해 나가야 합니다. 평화와 화해, 자비와 사랑, 그리고 공감의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길목에 난민은 어쩌면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보물로 우리에게 찾아온 천사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난민심사를 마치고 육지로 향하는 예멘 친구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친구입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다가가 웅크린 마음을 펴주어야 합니다.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져주어야 합니다. 절망한 마음을 희망으로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나라에 분쟁이 멈춰지고 오순도순 사랑하는 이들과 재회할 수 있도록 평화의 연대를 구축해가야 합니다. 그 길이 우리나라가 평화의 교두보로 세계에서 우뚝 설 수 있는 관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평화는 자비의 능선을 넘어야 합니다. 지구촌 저편에서 이 땅에 나그네로 찾아온 난민들에게 평화와 자비의 친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한기양님은 울산새생명교회 담임목사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