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9-05 17:49
[188호] 이달의 인권도서 - 돌봄과 인권 / 김영옥·류은숙 저 /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코난북스 2022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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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인권
-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
김영옥·류은숙 저 /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코난북스 2022 / 정리 : 최귀선


책의 마지막 부분 감사의 글에서 아픈 어머니를 아버지가 돌보다 집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는데 예방적 코호트 격리로 면회가 금지되면서, 어머니와 가족은 생이별했고 음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탈출한 상태에 이른 어머니를 상실한 세미나 구성원이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한 시간이었다며, 왜 돌봄을 인권 문제로 다루지 않는지 질문하여 ‘노인・인권・케어’ 모임을 만들어 세미나로 이어져 일단 ‘밭갈이를 한다’는 생각으로 세미나 결과를 책으로 엮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들어가며 ‘왜 돌봄과 인권인가?’를 묻는다.
돌봄의 필요와 욕구를 권리로 해석하는 것은 돌봄을 정의로운 관계 속으로 이동시킨다. 돌봄은 일방적인 숭고와 희생적인 행위, 사회 속 위치에 따라 불평등하고 불리하게 할당된 역할 의무가 아니라 인권이란 틀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권리이자 책임으로서의 행위가 된다. 권리 체계 안에서 돌봄에 의존하는 것은 구차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일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마땅한 대접을 받는 일이다. 돌봄에 의존하는 사람은 자신의 본성, 소속, 능력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고 의존을 이유로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인간의 보편적인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근거로 인권은 돌봄으로서, 돌봄은 인권으로써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돌봄의 토대는 인권이어야 한다고 한다.

2부에서는 요양보호사를 중심으로 돌봄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에 앞서 저자는 서로 기대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상상하기를 권하며 “폐 좀 끼치며 어때”를 외쳐보게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을 ‘돌봄 받는 사람’으로 위치시켜 보기를 바란다. ‘나’를 돌봄 의존자로 상상할 때 돌보는 일의 형태와 의미는 달라지며 돌봄에 관해 할 이야기가 더 많아지고 담론 차원에서 상상력의 교환도 더 촉구될 것이다.
예외 없이 보편적으로 취약한 우리가 모두 폐를 끼치며 살아간다. 폐 끼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존재들은 폐 끼치기의 호혜성을 위해 시민사회 차원의 토론과 각성을 추동한다. 의존과 돌봄을 무시하려는 사회적 과정과 흐름을 중단시키고 돌봄의 연대를 추동 한다. 의존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철폐하려 한다. ‘폐 끼치는 사람들의 연대’야말로 서로의 차이를 넘어 의존에 대한 공통 감각을 시민적 덕성으로 만드는 힘이다.
돌봄 현장의 한가운데 있는 돌봄자, 사회가 안 하거나 못하고 있는 돌봄이 떠넘겨지는 자리, 건강한 사람들이 인간의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보지 않아도 되게 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보호자가 죄책감과 막연함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돌봄을 고귀한 것으로 숭배한다는 미명하에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 동시에 돌봄에 대한 가치 인정을 회피하려고 ‘(저임금, 불안정, 비숙련)노동’의 낙인을 찍으려는 것, 이런 양가적 모순 사이에 낀 존재 돌봄 노동자가 보호받기를 바란다. 오로지 돌봄을 하면서 “생겨버린 책임감”과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열악한 노동 환경에도, 늘 부족한 시간에도, 사회적으로 너무나 낮은 인정에도 불구하고 가슴 뭉클한 돌봄을 하는 돌봄 노동자를 지키고 돌보는 노동 환경과 제도적·사회문화적 지원이 마련된다면 믿고 기댈 만한 돌봄이 가능하다는 사실의 증명되기를 바란다.

3부에서는 돌봄권을 말하며 돌봄 사회로의 전환을 상상한다.
돌봄의 핵심은 돌봄의 겹이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봄을 제공하고, 돌봄을 제공하는 그 돌봄자를 공동체와 제도가 보살피며, 이러한 돌봄 행위들의 선순환 속에서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켜내는 것이 돌봄권의 대상이다.
결국 돌봄권이 시민 모두의 일상에 뿌리내려야 사회적인 것이 재생산된다. 돌봄 관계는 상호의존적이며 호혜적이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상호성이 시민사회 전반에 실핏줄처럼 퍼져야 한다는 것이 돌봄권의 기본 정신이다. 돌봄을 주고받는 것이 모든 사회구성원의 시민적 덕성과 활동의 기본이 되는 사회가 돌봄 사회다.
돌봄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인류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뿌리 깊고 두꺼운 층으로 이루어진 ‘가족 돌봄’을 다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기를, 가족과 돌봄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가족의 독박 돌봄을 멈추기 위해 시민 돌봄으로 동심원을 그리는 시민의 자리를, 예산 편성과 집행에서 더 나아가 돌봄이 공적 가치로 주류화되도록 취약성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국가가 자리해야 함을 말한다.
어떤 노동으로 임금을 벌고 있고 그 노동으로 어떤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이런 돌봄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세계를 거주할 수 있는 곳으로 가꾸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일상, 그것이 돌봄 사회일 것이다. 돌봄을 억지로 받아 마셔야 하는 잔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돌보는 삶을 욕망하고 열망할 수 있을까? 임금노동을 열망하고 스스로 번 돈으로 자립하고 있다는 욕망이 우리를 지배한 것이 가능했다면, 돌봄을 주로 하면서 살 수 있는 삶에 대한 욕망은 왜 안 될까? 덜 일 하고 더 돌보는 삶으로 전환하려면 서로에게 돌봄권을 인정하고 부여하는 사회 체계 수립을 위해 돌봄 경험을 조직하고 본격적으로 상상하고 욕망하기 제안하며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