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8-04 18:37
[187호] 여는 글 - 노동 중심의 ‘기업과 인권’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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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사무국
조회 :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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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중심의 ‘기업과 인권’을 기대하며
박영철
‘제5회 기업과 인권 울산컨퍼런스’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울산 동구청으로 자리를 옮겨 개최한 두 번째 행사였다. 올해에는 무엇보다 주한EU 대표부 경제통상참사관을 초청하여 강연한 것이 주요했다고 본다. 올해 행사는 파격적으로 진행된 것이 많았다. EU 참사관의 기조발제도 그러하거니와 1세션 이후 마련된 대상별 특별회의와 노동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2세션을 과감하게 저녁 시간으로 늦춰 시작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지역의 인권활동가들을 초청하여 각 지역별 공기업 인권경영위원회의 실태를 파악하고 점검하는 자리를 기획한 것이 매우 뜻깊었다. 비록 준비의 부족으로 올해에는 많은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기업과 인권’이라는 주제를 인권진영의 논의로 확산하는 것이 절실했기에 이 실험은 절반의 성공이라 자평하고 싶다.
올해의 컨퍼런스에는 상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기업과 인권’, ‘ESG’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울산뿐만 아니라 부산이나 경남, 심지어 서울에서도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에서는 행사 전체를 촬영하여 교육에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오기도 했다.
이틀째 되던 아침 세션, 당연히 텅 빈 빈약한 객석을 상상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감동했다. 5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기업과 인권’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순간 그동안 지역에서 어렵게 만들어왔던 우리의 노력들이 조금씩 성과로 쌓이고 있다는 믿음에 우리 ‘울산인권운동연대’가 자랑스러웠다.
5년 전 오늘, 과연 ‘기업과 인권’이라는 낯선 주제에 누가 관심이나 있을까 하며 개최를 망설였던 기억, 왜 인권단체가 자본에서 주장하는 ‘기업과 인권’, ‘인권경영’을 주장하냐며 회원을 탈퇴하겠다는 항의 전화를 받았던 웃픈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여전히 낯설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들이 대세이지만 그래도 ‘기업의 인권존중책임’을 강조하는 ‘기업과 인권’이 최소한 노동자들의 인권을 옹호한다는 믿음에는 이견은 없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1세션에 참여했던 이승협 교수나 황필규 변호사가 제기한 “수년째 반복되는 주제와 발표내용”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구체적 사안으로 전개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두 발표자가 뼈아프게 지적했던 ‘울산컨퍼런스’의 방향은 결국 한국 내에서 ‘기업과 인권’의 논의가 매년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현실과 결부되기에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 답답한 지점이다.
그래서 나는 ‘기업과 인권’ 논의를 누구도 주도하지 못하는 국내 상황을 탓하기보다 이러한 부침 속에서도 ‘기업과 인권’ 논의의 확산과 민간영역으로 이행을 강화를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인 노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떠한 역할을 담당할지 사례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장이 오히려 더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현실은 막막하다. 솔직히 어느 노동조합도 기업의 인권경영이나 ESG 경영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심지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노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인권경영’이나 ‘ESG’를 다루고 있는 어떤 곳도 이러한 사례를 연구하거나 실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재정이 불안하다. 이번 행사도 그렇지만,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지만 구멍가게인 울산인권운동연대에서 이를 감당하기가 매우 버겁다. 근근이 후원을 조직하여 행사를 치렀지만, 여전히 내년에 대한 확답은 없다. 내년에도 누군가 나타나겠지. 희망을 품을 뿐이다.
울산이라는 지역의 작은 도시에서 내용도 재정도 그리 튼튼하게 받쳐주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기업과 인권 울산컨퍼런스’는 계속되길 바란다. 적어도 노동자의 도시, 기업도시 울산에서 이 논의를 끌고 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소위 ‘기업과 인권’을 논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몇 년의 노력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기업과인권네트워크’가 주도하여 공급망실사와 관련한 법 제정이 구체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이나 L-ESG평가연구원 등을 통해 새로운 논의들이 촉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ESG 트렌드에 편승한다는 비판도 함께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 자본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논의가 노동을 중심으로 한 축이 변화되는 지형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제6회 기업과 인권 울산컨퍼런스’를 상상해본다. 1년여 동안 진행되는 이들의 논의와 실험, 그리고 그 결과가 울산에서 격렬하게 토론되고 공유되는 시간들을 말이다.
※ 박영철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상임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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