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6-03 18:25
[185호] 시선 하나 - 교실이 힘든 요즈음, 스승의 길 포기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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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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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 힘든 요즈음, 스승의 길 포기하지 않길
신강협
근래 교육 현장은 혼돈 그 자체다. 교사는 교육활동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엉뚱하게도 학생 인권이 교권 침해의 원인이라며 일부 정치세력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있다. 그에 반대해 학생 인권을 중시하는 인권단체들은 이번 기회에 학생인권법을 만들어 이러한 퇴행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교육 주체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시기, 스승의 날은 어떤 날일까? 스승의 날은 대한민국의 기념일 중 하나로 스승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함을 전하는 날이다. 매년 양력 5월 15일이다. 이날로 정한 이유는 바로 '겨레의 스승'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전국 온 백성에 가르침을 주어 존경받는 것처럼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시대가 왔으면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4년 2월20일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도입 및 피해 학생 최우선 보호를 위한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올 3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는 그동안 교원들이 학교폭력 사안 조사를 담당하면서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의 대상이 되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비판에 대응하면서 교사의 본질적인 업무인 수업과 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도에서 시행되었다.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교육부-행정안전부-경찰청은 사안 처리 제도를 개선해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이 학교폭력 사안을 담당하도록 했고, 이를 명문화한 것이다.
사실 학교폭력의 문제는 학교라는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사회성을 키우는 교육의 장소이다. 그러한 곳에서 학교폭력은 교육적 목적 달성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고, 교육의 주체들은 그러한 문제 해결에 적극 노력해야 할 교육적 책무가 생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반추하고 행동과 태도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배워야 하며, 학부모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야 하며, 교육자는 교육적 목적 달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개정령안은 이러한 교육 현장의 핵심에 교원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일부 교사들은 이번 개정령안을 반기면서도 교사들이 일차적인 교육적 화해의 역할을 보다 더 충실히 함으로써 학교폭력의 문제가 법적인 문제로만 다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령안으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 학교폭력의 문제는 교사들의 손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결국 학교폭력의 결과는 전담조사관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육자가 교육적 화해를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하려 해도, 이미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폭력 사건의 결말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학교폭력의 최종적 결론에 역할이 없는 교사는 당연히 그 과정에서 소외되기에 십상이다. 결과적으로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그동안 교육활동을 통해 맺은 학생과 교사의 인격적 관계는 교육현장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 학교폭력의 결론은 변호사의 활동과 더불어 법적 기관의 판결을 통해 내려진다. 필자는 이번 교육당국의 조처로 스승이라는 교사의 명예로운 권위가 크게 손상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갈등이라는 큰 교육적 상황에서 교사의 지혜는 발휘될 틈이 없어지는 것이며, 갈등을 통해 선생님으로 배우는 지혜도 사라질 수 있다.
고대 켈트족에게 ‘드루이드’라는 제사장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단순히 한 종교의 제사장이 아니라 켈트 사회의 윤리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켈트족 사람들은 그들이 자신들에게 지혜를 준다고 믿었고, 드루이드는 사람들의 존경을 얻었다. 유대교에는 ‘랍비’가 있었는데, 그들은 유대교의 율법을 가르치면서 그 민족에게 지혜를 전수하는 사람들이었다.
인도와 동남아 쪽에는 ‘구루’라는 말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스승’이라는 뜻을 가지며, 지혜로운 선각자 인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스승은 세상에 지혜를 전하는 사람들로서 존중받는 사람들에 대한 호칭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스승’이라는 말은 덕망이 높은 스님을 일컫는 말로 세상에 대한 지혜를 널리 설파하며 가르치는 덕망 있는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이 우리나라 사람들이면 누구나 차별 없이 글자를 배우고 지혜를 깨치게 해준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려 그의 탄신일로 정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스승은 모두의 존경과 존중을 받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된다.
반면 ‘교사’라는 단어는 필자가 느끼기에 직업적 의미가 강하게 느껴진다. 교사라는 단어에 대한 유감은 없다. 다만 필자의 어린 시절 느꼈던 ‘스승’이라는 말의 느낌이 많이 아련해진다. 교권 침해라는 이유를 대며 학생인권조례를 마구잡이로 폐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이라는 정책 도입으로 인해 진정한 ‘스승’님을 찾기가 더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 인권을 통해 교육현장에 교육 주체 간의 존중 의식이 높아진다면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근원에서부터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상호 간의 존중 의식을 교육하고, 그 배움을 학생들이 실천한다면 선생님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더 쉽게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와 행동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선생님은 존중받는 스승님이라는 명예로운 권위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아는 몇몇 선생님은 학생들과 잘 어울린다. 학생들도 선생님에게 스스럼이 없다. 그 선생님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과 여러 가지 규칙을 세움에 있어서 학생들의 요구를 존중해주고, 스스로 결정하게 해준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고 조언을 청하기도 한다. 자기 자존심이 상할 것 같은 사적인 고민도 선생님과 함께 풀어간다. 학생들은 그 선생님을 스승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어떤 과목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무슨 전문 강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이야기는 필자가 실제로 알고 있는 현직 선생님들의 이야기이다.
선생님들이 좀 많이 힘든 상황인 듯하다. 그리고 지금의 교육 현실 속에서 스승의 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고 필자도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교육현장에 있는 선생님들이 조금 힘들더라도 스승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교폭력 등 학교 내 문제가 쉽지 않겠지만 어떻게든 교육적 방식으로 그리고 교육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스승님을 만날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신강협 님은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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