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5-31 19:02
[149호] 이달의 인권도서-『 공감의 배신』- 폴 블룸(Paul Bloom)저 / 시공사 2019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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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배신

폴 블룸(Paul Bloom)저 / 시공사 2019 / 정리 : 조양재


# 폴 블룸 : 예일대학교 교수이자 심리학자


보통 공감을 해야지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저자는 공감을 반대한다고 한다. 심리학과 교수면 오히려 공감을 이야기할 것 같은데, 오히려 공감을 반대한다는 표현이 좀 의아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감에 반대한다는 말은 정신 나간 소리나 농담으로 들릴 수도 있다. 세계 평화에 반대하거나 새끼고양이를 싫어하는 것처럼….
공감에 반대한다는 말은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만약 착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공감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이다. (p.13) 저자는 공감에 숨겨진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상식과 편견을 깨는 메시지로 독자들이 공감에 반대하도록 설득하고자 한다.

# 공감의 의미

저자가 말하는 공감은 관심(concern), 동정(compassion), 친절(kindness), 사랑(love), 도덕성(morality)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이는 전부 좋은 것들이고 우린 당연히 서로 사랑해야 하고, 서로 관심을 가져야 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공감의 또 다른 의미로는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판단하는 능력’도 있다. 이는 ‘정서 지능’이나 ‘마음 이론’, 혹은 ‘직관 심리’라고도 한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하니까... 저자는 이 공감의 의미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 공감을 반대하는 이유 - 첫째, ‘편파적이고 편향된 시선일 수 있기 때문에’

누구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저자는 공감 능력으로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감 역시 지능의 한 형태로 다른 지능과 마찬가지로 선한 일에도 악한 일에도 사용될 수 있다. 좋은 사람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면 득이 되겠지만 바람둥이나 사기꾼, 조직폭력배 등도 타인의 마음을 이해함으로써 이득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공감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도구일 뿐이다. 도구는 목적을 가리지 않고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은 지금 여기 있는 특정 인물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스포트라이트다. 공감은 그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쓰게 하지만, 그런 행동이 야기하는 장기적 결과에는 둔감해지게 하고, 우리가 공감하지 않거나 공감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보지 못하게 한다.
공감은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어서 지역이기주의와 인종차별주의 쪽으로 우리를 몰고 간다. 공감은 근시안적이어서, 단기적으로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에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행동을 유도한다. 공감은 간단한 산수도 할 줄 몰라서 한 사람을 나머지 사람들보다 편애한다. 공감은 폭력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행동은 나머지 사람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잔학 행위를 일삼도록 자극하는 강한 힘으로 작용한다. 공감은 대인관계를 좀먹는다. 공감은 정신을 소진 시키고, 친절과 사랑을 베풀 힘을 약화시킨다. (p.22)
공감이라는 스포트라이트의 방향은 우리가 정하는데 우리는 종종 잘못된 곳을 비춘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은 편파적이기 쉽고 수치가 중요한 상황에서도 계산을 못 하고 무시해버린다. 또한 현실에 국한되어 지금, 이곳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결과를 폭넓게 보지 못한다.

- 둘째, ‘공감은 폭력 충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공감이 어떻게 폭력을 유발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저자가 공동으로 벌인 실험 중에 하나를 소개하자면, 피험자들에게 잔혹 행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떤 기자가 먼 나라에서 납치되어 고문당하다가 죽은 이야기이다.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국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물었다. 선택지의 항목은 점점 강도를 높이고, 피험자의 공감 능력도 측정했다. 공감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등급을 매긴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예상대로 공감 능력이 높을수록 더 심한 보복을 원했다. 공감은 이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폭력 충동을 일으킨다.

- 셋째, ‘잘못된 편견에 공감할 경우 악행을 유발하기 때문에’

저자가 공감을 반대하는 건 도덕적 행동과 판단에 국한된 것이다. 공감에는 다른 장점이 많다. 상대방에게 공감하며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 스포츠나 영화, 텔레비전은 삶의 큰 즐거움이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건 정말 흥미 있는 일이다. 저자도 자신의 공감 능력을 없애 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공감을 통해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공감이 선행을 추구하는 동기로 사용될 때나 옳고 그름을 가려서 행동하는 기준이 될 때, 도덕성이 파괴되는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저자의 결론은 “우리의 도덕적 결정과 행동은 공감의 힘에 영향을 아주 많이 받으며, 이것은 종종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든다. 우리에게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공감은 주로 감정과 관련된 문제가 많지만, 감정에 충실해서 행동하는 것보다 오히려 감정을 좀 거리를 둔 상태에서 이성적으로 충분히 생각하고 난 다음에 행동하는 게 훨씬 필요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