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1-28 18:33
[145호] 시선 하나 ? 자기낙태를 논하라!
|
|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4,549
|
자기낙태를 논하라!
배미란
만약 우리 사회에서 살인이나 절도를 처벌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범죄에 대한 처벌이 사라지게 된다면 살인을 저지르거나 절도를 저지르는 사람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까지 처벌되어온 자기낙태를 처벌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 우리 사회에서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조항이 없어졌으니 아무렇게나 임신을 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낙태를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될까. 과연 그럴까.
1953년 형법의 제정과 함께 범죄로 규정된 이른바 자기낙태죄는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유지되었으나, 기한 내에 대체 입법을 하지 못하여 2021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러한 탓에 낙태죄를 둘러싼 국민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고, 이에 관한 여론도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대립의 핵심은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즉, 한편에서는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자기낙태를 범죄로 규정해 둠에 따라 국가가 여성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통제하고, 출산을 강요해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태아도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비록 낙태를 선택한 사람이 임신한 여성이라 할지라도 형사처벌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권리와 태아 생명의 보호라는 양자는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자기낙태죄의 폐지에 관한 찬반 논의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찬반 논의만 지지부진하게 이어져 오는 동안, 정작 임신한 여성과 태아를 위한 현실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은 이후에도 국회가 허둥지둥하고 있는 사이에 현실의 기로에 선 누군가의 고민만 더욱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기낙태죄 폐지의 문제는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 중에서 어느 하나를 희생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 논의의 핵심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임신한 여성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 밖에는 답이 없는가 또는 우리 사회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할 수 있는 수많은 방안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 자기낙태죄를 유지하는 것인가에 있다. 이 논의를 매듭짓고 새로운 논의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게 옳은가’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같이 자기낙태죄는 폐지되는 것이 옳다.
형법은 최후의 수단이다. 즉, 우리 사회에 규율해야 할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에는 현재 상황의 통제가 우선적으로 도덕이나 윤리, 관습 등과 같은 법 이외의 사회 규범으로 가능하다면 입법은 필요치 않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 규범으로 규율하기 어려울 때에는 입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나, 형법은 다른 모든 법규범을 활용해서도 그러한 상황의 규제가 어려울 때에 비로소 등장해야 하는 법률이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국가가 형법으로 금하고 있는 개인의 생명이나 자유, 재산 등의 침해를 형벌이라는 명목 아래 국가가 나서서 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법률이 바로 형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낙태를 하기 위해 임신을 하는 여성은 없고 태아의 생명은 물론 스스로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 낙태를 하고자 할 때까지 아무런 고민 없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없다. 많은 여성들이 본인의 삶과 태아의 생명, 그리고 그 미래를 두고 어려운 결정을 하고 있을 때 우리 사회는 과연 이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었을까. 적어도 여성에게 임신 유지와 낙태를 드러내놓고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이라도 마련되어 있었다면 이에 관한 전문적인 상담을 받거나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올바른 결심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기낙태의 문제는 그저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나서서 이러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제도나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임에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미명 아래 임신한 여성의 낙태를 범죄로 규정해두고, 이에 관한 제도나 정책 마련에는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형법에 자기낙태죄 규정을 둔다고 해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할 수 있는가. 그것도 그렇지 않다. 현재의 자기낙태죄 논의와 같이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사회규범 내지 타 법률에 의한 규율로서 해결해야 할 영역이 범죄로 규정되어 있을 때, 이를 형사처벌의 영역에서 제외시키는 것을 비범죄화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비범죄화를 검토할 때 고려되는 사항 중에 하나가 특정 유형에 대한 국가 통제가 오히려 그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아닌가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흡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금연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나 흡연자들에 대한 금연 치료와 같은 치료적인 접근 없이 담배의 판매를 완전히 중단한다거나 흡연행위를 범죄로 금지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들이 금연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암암리에 담배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흡연자들은 사회의 건강한 도움을 통해 금연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될 뿐이다.
현재 자기낙태죄의 처벌은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낙태갈등 상황에서 어떠한 사회적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여성이 결국 임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결정에 이르게 되면 불법적인 낙태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 자체도 불법인 탓에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과실이나 후유증 등에 대한 구제를 받을 길이 없다. 또한 종전에는 낙태수술이 불법이었음에도 이러한 사실로 실제 형사처벌된 사례도 매우 드물다. 즉, 자기낙태죄는 이미 사문화되어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금지규범으로서의 역할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고, 단지 낙태와 관련된 건강한 논의와 적법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 마련의 길을 막고 있는 장벽에 불과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형법은 우리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일 뿐이고, 리스트의 말처럼 “좋은 사회정책이야말로 최상의 형사정책”이다. 이제는 자기낙태죄 폐지에 관한 찬반 논의에서 벗어나 그동안 가로막혀 있던 자기낙태에 관한 건강한 논의를 시작할 때이다. 그리고 그동안 자기낙태죄의 뒤에 숨어 손 놓고 있던 여성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 배미란 님은 울산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며,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