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6-01 18:07
[137호] 여는 글 - 이름, 성(姓)과 명(名)으로 띄어쓰기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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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성(姓)과 명(名)으로 띄어쓰기


오문완



이 법률은 뭐하는 법률인가요?

① 대한민국과아메리카합중국간의상호방위조약제4호에의한시설과구역및대한민국에있어서의합중국군대의지위에관한협정의시행에따른국가및지방자치단체의재산의관리와처분에관한법률
잘 모르겠지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읽는 것과 같아서. 읽고 싶지가 않은가요?

이건 어떤가요?
② 大韓民國과아메리카合衆國間의相互防衛條約第4條에의한施設과區域및大韓民國에있어서의合衆國軍隊의地位에관한協定의施行에따른國家및地方自治團體의財産의管理와處分에관한法律
앞의 법률보다는 이해하기가 편하지요. 낱말(단어)은 한자로 돼 있고 조사나 접속사, 외래어만 한글로 돼 있어 쫓아갈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표의문자인 한자는 붙여 쓰기를 합니다. 그래서 붙어 있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지요.(표음문자인 영어나 한글은 띄어쓰기가 원칙이고.) 아쉽게도 한자를 모르면 읽지도 못 한다는 점에서는 더 답답할 수도 있겠네요.

이건 어때요?
③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의 시행에 따른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재산의 관리와 처분에 관한 법률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읽을 수는 있겠지요.

이(들) 법률의 특징은 뭘까요? 예,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목(명칭)이 가장 긴 법률입니다. 글자 수가 몇 개인지는 각자 세 보세요. 물론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가면 더 길어지겠지요.(한 글자, 그리고 두 글자)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은 한국과 미국이 서로 상대 국가를 지켜주자는 약속이겠지요. 그리고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은 그 약속에 근거해서 미군의 지위를 정한 협정이겠습니다. 어디선가 좀 들어본 친구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보통 SOFA라고 부르는 협정입니다.
영어로는 Agreement under Article 4 of the Mutual Defenc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Regarding Facilities and Areas and the Status of United States Armed Forces in the Republic of Korea)입니다. 보통은 줄여서 한미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협정이라고 부르지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럼, 제일 길다는 문제 법률의 내용은? SOFA협정의 시행에 따라 국가하고 지방자치단체 재산의 관리와 처분이 필요한데 그것을 정하는 내용의 법률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지요. 쉽게 이해하자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해야 하니 너희 땅과 건물 내놓아라, 이런 얘기입니다.

이 제목만(무늬만) 다른 듯, 내용은 같은 법률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요?
우선 ③번이 가장 최근의 법인 건 아시겠지요. 읽을 수 있는 요즘 방식의 법이니. (2011년 개정법) ①과 ② 중엔 ②가 앞선다는 것도 아시겠죠. 국한문 혼용이니. 그러면 왜 ①은 한글 전용이면서 읽을 수 없는 (제목의) 법을 만들었을까요?
우리 맞춤법에 고유어(명사)는 어떻게 쓰게 돼 있나요? 예, 맞습니다. 다 붙여 씁니다. 그러다 보니 ①과 같은 우스운 결과가 벌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법제처는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에 많은 공을 들여 오늘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생각은 들지 않나요? 맞춤법도 법인데 법제처가 법을 어긴다. 저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안 되는 건 고쳐야 한다는 것이고, 그 일은 국가기관이라고 손을 놓아서는 안 되겠지요. 그래서 한때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라는 정체불명의 법이 이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으로 정리됐습니다.

그럼 연습 문제? 오문완 vs. 오 문완, 어느 게 맞나요? 저는 성과 명을 띄어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예전에는 띄어쓰기가 맞춤법이기도 했구요). 지금 맞춤법은 붙여 쓰라고 하고, 저도 소심해서 붙여 쓰고는 있습니다. 대범해서인지 성과 명을 띄어 쓰는 학생들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오문’이라는 성이 없으니 오가 성이고 문완이 이름이라는 건 대강 눈치 챌 거예요. 하지만 누군가 ‘오문’이라는 성을 선점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지죠. 저희 학생 중에 황보선혜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복성 ‘황보’에 ‘선혜’라는 이름인 게 분명하니 그래도 괜찮은 편입니다. 남궁민이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는데, 이 친구 멋있더군요. 자 이 친구는 남 궁민인가요, 남궁 민인가요? 아마 남궁 민일 것 같은데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름이 자신을 나타내는 것인데 어떠한 이름(성명)인지 알지 못하게 하는 맞춤법이라면 고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창작과비평사, 역시 못마땅합니다. 문학과지성사, 역시 당연히 띄어 써야지요.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이름은 모든 것의 출발이라고 하는데 이름 쓰기부터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무어 제대로 될 게 있나요. 자, 이름을 부를 때 성(姓)과 명(名)을 띄어 부르고, 띄어 쓰는 운동이나 시작해 볼까요?


※ 오 문완 님은 울산대 법학과 교수이며, 인권연구소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