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에 ‘적정’한 판결을!
배미란
형사소송의 목적은 “적정절차에 의한 신속한 실체진실의 발견”이다. 즉, 적정절차를 통해 객관적 진실을 발견하고, 사안의 진상을 명백히 해야 한다. 아무리 객관적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적정한 절차를 벗어나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죄 없는 사람을 벌하여서는 안 된다. 더하여 누구든지 유죄의 확정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언제나 무죄로 추정된다.
이런 연유로 뉴스 등에서 회자되는 형사사건을 접할 때마다 제대로 된 사실관계를 알지 못한 채 섣불리 어떠한 판단을 내리거나 해당 사건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가능한 한 더욱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보다 명확한 사실관계 위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 그래서 언론에서 주목받는 형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노력하고,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면서 고심하여 검토를 해 왔다.
그런데 언론에서 이른바 n번방 사건을 접하게 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성노예’라는 그 세 글자의 무거움과 처절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무려 2020년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 언론에서 이 세 글자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그 심정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특히 이 사건의 피해자 중에는 미성년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나 역시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기에 공평한 마음으로 사건을 바라 볼 자신도, 담담한 마음으로 사건 관련기사를 읽어볼 자신도 없어졌다.
그래서 미리 밝혀 두건대, 이하에서 제시하는 의견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른바 박사방 운영자 조씨의 공소사실 요지 정도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더 이상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의 것이다.
첫째, 흔히들 끔찍한 사건의 범죄자를 ‘악마’라고들 하지만,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악마가 아니고, 사람이다. 그래서 더 끔찍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엄벌을 요구하고, 일벌백계해야 함을 말한다. 그런데 엄벌이나 일벌백계는 그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저지른 죄보다 더욱 무겁게 엄하게 처벌할 때 쓰는 말이다.
현재 언론에서 드러난 조씨의 죄명은 총 14개에 이른다. 그 중 대표적인 범죄로서 약칭 청소년성보호법상 음란물제작·배포죄만 해도 법정형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정해져 있다. 양형을 통해 어떠한 판결이 내려질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떠한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이 사건에 대한 엄벌이 내려진 것이 아니라, 단지 ‘적정’한 처벌이거나 경미한 처벌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이러한 사건일수록 주범에 대한 처벌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가담한 자 전원에 대한 수사와 감춰진 조직이 있다면 그 실체를 밝혀내어 빠짐없이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 범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어쩌다 발각이 되어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와 범죄를 저지르기만 하면 반드시 본인이 지은 죄보다 조금 더 무거운 수준의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어떠한 경우에 더 두려움을 느끼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전자의 경우에는 발각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이 특정 누구 한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진 탓에, 그 밖의 가담자에게는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그 중 누군가는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게 된다면, 향후에 동일한 사건의 재발을 막지 못할 것이다. 처벌을 받은 누군가는 본인이 저지른 범죄는 생각지 못하고, 억울하게 더 많이 처벌받았다는 생각에 교화되기 어려울 것이고, 법망을 빠져나간 누군가는 스스로가 법 위에 있다는 어리석은 자만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주범에 대한 엄벌에 있지 않다. 주범 및 그 가담자 전원에 대한 적정한 처벌에 있다.
셋째, 이번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성범죄의 양형기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범죄(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의 양형기준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러한 범죄가 성범죄, 디지털범죄, 여성이나 아동·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라는 다양하고, 중요한 특성을 안고 있는 만큼 이러한 특성을 잘 고려하여 제대로 된 양형기준 및 양형인자를 마련하게 된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양형기준은 한편으로는 유사한 사건에 대한 들쑥날쑥한 판결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양형기준에 따른 양형의 객관성·형평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개별사안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한 양형의 적정성은 필연적으로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많다.
즉, 그 동안 많은 성범죄 판결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과 분노는 양형기준이 없음에 따른 양형의 형평성이 문제된 것이 아니라, 그간 이러한 범죄와 유사한 범죄에 대해 이미 내려진 판례나 법정형이 동일한 수준의 범죄에 이미 설정된 양형기준과의 형평성 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러한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적정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선례를 뛰어넘는 판결,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기존의 양형기준을 뛰어넘는 판결을 오직 법관의 몫으로만 남겨둔다면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국민들이 적정하다고 느끼는 판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그 일을 오직 법관의 몫으로만 남겨둬서도 안 된다. 우리 형사절차에는 국민참여재판이라는 것이 있다. 전국민이 ‘전’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이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지켜보고 의견을 제시하면서 양형의 형평성과 양형의 적정성의 기로에 선 법관의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주는 것은 어떻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사건에 대한 처벌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끝난 이후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피해자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고, 성범죄에 대한 보다 적정한 처벌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나 편견도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절도죄의 피해자나 폭행죄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피해자다움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성범죄의 피해자에게만 피해자다움을 요구해서도 안 되고, 동정이나 연민을 가장한 주홍글씨를 성범죄 피해자에게 덧씌워서도 안 된다.
성범죄 피해자는 어디까지나 범죄의 피해자일 뿐이고,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아량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범죄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사회적 책임으로서 보호·지원을 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 범죄, 피해자나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마주보기조차 힘들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끝까지 함께 이 사건의 결말을 지켜볼 일이다.
※ 배미란 님은 울산대 법학과 교수이며,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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