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2-03 14:53
[133호] 여는 글 - 통해야 안 아프다(通卽不痛)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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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야 안 아프다(通卽不痛)

오문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런데 그 복이 신(神)을 믿는 사람들한테는 자신의 하느님께서 주시겠지만,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나와 너, 우리 사람들이 주리라고 믿을 터이고 결국은 인간(人間)에서 부대끼는 가운데 받게 될 겁니다. 우리가 인권을 얘기하면서 소통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김 모 씨는 웬만한 인권연대 식구라면 알만한 분입니다. 연대가 이제야 20년 생일을 맞게 될 만큼 키가 자랐습니다만, 초창기에는 애가 잘 크기나 할까 걱정거리일 따름이었습니다. 이 아이를 오늘의 청년으로 키운 주역 가운데 한 분이 이분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분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연대는 급히 조문단을 꾸렸고 몇이 몰려가서 유족과 슬픔을 같이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올 때 얘기입니다. 상가는 제주도의 시골이라 차를 렌트했다는 데서 일이 생깁니다. 숙소에서 나와 아침을 잘 먹고 제주공항으로 가는 과정의 일입니다. 일행 중 둘은 공항에서 내리고 둘은 렌터카를 반납한다고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여하간 공항에서 다시 만나야 합니다. 만날 장소를 두고 벌이는 덤 앤 더머(Dumb & Dumber)의 대화법입니다.

Dumb : 8번 게이트로 오세요.
Dumber : 3층에는 게이트가 5번까지입니다.
Dumb : 내려오세요.
Dumber : 아니, 비행기는 3층에서 타야하는데 왜 내려가요?
Dumb : 어, 저희는 이미 검색대 통과해서 면세점 앞쪽에 있는데요.
Dumber : 으잉, 비행기표를 주셔야 입장을 할 것 아닙니까?
Dumb : 어, Smart 씨 얘기로는 비행기표를 받았다는데요.

※ 여기서 우여곡절 : 실은 제3(제5?)의 인물(Smart 씨)이 같이 문상을 왔다가 울산이 아니라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했습니다. 일이 있어서. 그리고 자신은 표를 받았고 먼저 부산으로 떠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Dumb씨는 Dumber팀이 울산가는 표를 받았다는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어쨌든 Dumber팀은 비행기표 자판기에서 (노력 끝에) 표를 받았고, 8번 게이트에서 Dumb팀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후일담입니다.

앞의 Dumb & Dumber의 대화는 각자 자기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데서 일어난 해프닝을 보여줍니다.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생각만 전한 것이지요. 옛날부터 통하지 못하면 문제라는 얘기가 전해옵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란 말이 있다네요. 통하면 아프지 않은데, 통하지 못하면 아프다는 얘기지요. 의학적으로 얘기하자면, 인간은 혈액순환이 안 되면 아프고, 혈액순환이 잘되면 건강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얘기는 한의학뿐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아주 좋은 상태를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고 하는 것일 터이구요.

인권의 시각에서는 ‘다르다’와 ‘틀리다’의 구분법을 생각해봄 직합니다. 우리가 잘못 쓰는 용어 중 대표적인 게 ‘틀리다’라는 표현일 겁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견해와 주장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틀린 사람’으로 단정해 버리곤 합니다. 자신이 ‘틀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때 세상은 조금은 좋아지지 않을까요. 너와 내가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상을 꿈꿉니다.

통하지 못하면 아픕니다.
(음력으로)새해입니다. 다들 건강하시고 형통(亨通)하세요.


※ 오문완 님은 울산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부설 인권연구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