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1-01 21:18
[130호] 시선 하나 - 제9회 세계인권도시포럼 '지방정부와 인권'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5,517  

제9회 세계인권도시포럼
‘지방정부와 인권’

김가연


벌써 9회를 맞이했다는데 참 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큰 행사다. 대표님께서 꼭 한번 참여해 보기를 권하기도 했고 포럼의 주제를 보니 욕심나는 꼭지가 제법 있어 참가신청을 하고는 막상 출발하기 전까지 전혀 머리에서 밀어놓고 당면한 일에 허덕이다 출발 전날을 맞았다.

광주에 버스가 정차할 무렵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무려 재난문자 되시겠다. 비는 쏟아지고 그 후로 몇 번의 재난문자를 받으며 먼저 출발한 선발대를 만나러 가는 길.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5·18 기념관을 물어보는데 아마도 기념공원과 헷갈려 하시는 듯하다. (광주 사람이 5·18과 관련된 것을‘잘’모른다는 것에 대해 묘한 실망감이 일었다.) 점심을 먹고 포럼이 열리는 ‘김대중 컨벤션홀’로 향한다. 컨벤션홀에 사람이름이 있으니 이질감이 든다. 한편으로는 예사롭지 않은 도시구나 싶기도 하고.

처음 참가한 프로그램은 「지속가능 인권도시 실현을 위한 혐오차별 대응전략」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단 섹션이었다. ‘포용, 안전, 회복력 있는 도시 조성을 위한 혐오차별 대응전략 모색’이라니 부제마저도 기대감에 부풀지 않을 수 없는 섹션이 아닌가.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한 만큼 실망감이 밀려왔다. 혐오와 차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법한 내용들을 나열하는 식이라니.. 전체적 분위기가 무거워 졌다.

가장 큰 참가목적을 가진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내노라 하는 활동가들의 발제와 그간의 서사, 또 혐오와 차별에 대응하고 있는 각 단체의 노력과 어려움을 함께 들을 수 있는 뜻 깊은 자리로 활동가 네트워크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엇이 혐오인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부터 인권활동에 대한 지역적 편차의 문제, 각 지역의 조례제정 상황공유, 그리고 인권교육에 관련한 내용까지 넓고 다양하게 인권과 혐오, 차별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었다. 연대 내에서 인권교육과 관련된 일을 주로 하는 나는 다른 어떤 것 보다 권리의 분절적인 교육을 지양하고 ‘존엄에 대한 감각과 인권 주체로서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부분이 와 닿았고 학생활동가로써 인권교육을 어떻게 해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학생의 질문에 마음이 울렸다.
아직 새내기에 불과한 이름만 인권활동가인 나지만 그 학생의 물음에 한편 부끄러움을 느꼈고 또 한편 미안함과 대견함이 공존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희망과 절망이 같은 공간에서 소용돌이치는 느낌이랄까..

요즘 시설 인권교육의뢰를 받을 때 꼭 요청받는 내용이 있다. ‘이용자/이용자 간, 종사자 이용자 간 학대예방 내용을 꼭 넣어서 진행해 주세요. 평가 내용에 들어가 있어서요.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학대예방’이라는 말이 너무 노골적이고도 형식적으로 들려 기분이 나빴다. 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인권교육이라니. ‘학대’는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지만 인권교육이 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용자와 종사자를 떠나 어떤 관계에서도 상대를 대상화 하는 것을 경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권교육이고, 종사자가 이용자를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도록(자신도 모르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면 그 시선을 환기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 인권교육이라고 생각하며 인권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교육을 하면서 배우고 준비하면서 배우다 보면 또 ‘아차’하며 지향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

“신고 절차를 배우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이 내 마음속의 묵은 체증을 내리는 소화제가 되었다. 신고절차를 배우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듯 무엇이 학대인지 아닌지를 구별해 내기위함이나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인권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전제하게 되면 이용인들이 정서적인 서비스를 받기 힘들어진다.(이 이야기는 더하면 길어질 듯하니 다음기회에…….)

새내기 인권활동가가 만난 위대해 보이는 전국의 활동가들. 그들과 함께한 두 시간이 새내기 인권활동가의 ‘피’가되고 ‘살’이 되었다. 이제 인권의 이름으로 포동포동 살쪄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 김가연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