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0-30 15:46
[142호] 시선 둘 ? 울산교육연대 토론회 ‘코로나시대 교육불평등심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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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사무국
조회 : 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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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가 교육에 남긴 것은
18세의 첫 선거를 함께 하고 싶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3학년 담임을 지원하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계속 연기되었다. 답답하긴 했지만, 일종의 ‘전시 상황’이라 스스로 다독였다.
그렇게 4월이 되었다. 갑자기 형태와 내용을 모두 알 수 없는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했다. 고3 입시를 위한 시수확보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온라인 개학과 동시에 입시 일정이 12월 3일로 발표되었다. 수능일은 비행기도 숨을 죽이는 우리나라가 아니던가? 역시 입시를 위해 교육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 문제는 수업의 질이 아니라 출결
며칠 후 교육부의 출결 지침이 내려왔다. 수업 기준 5일, 담임 기준 1주일로 하되, 과제제출이 일주일을 넘기면 결과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온라인 수업인데 결과 처리가 있는 것은, 정해진 시간 안에 학생들이 접속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전략이다.
전체 배움의 내용에 접근하고 그것을 소화하고 복습하는 접근성과 속도를 자기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것이 아니던가? 온라인 수업을 두고 미래 교육 운운하면서도 현재 가장 전근대적인 출결 시스템을 적용하는 형태의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은 코미디 같았다.
# 21세기 기술로 19세기적 통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
‘실시간’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쌍방향’은 불가능했다. 학생들의 말이 띄엄띄엄 들려서 원래 그 학생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오해되기도 해서 학생들은 몇 번 말을 하다 멈추기도 했다. 결국 zoom등 의 프로그램으로 가능한 수업은 ’실시간 단방향‘ 수업이었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런 것을 태연하게 ’쌍방향‘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것이 ’미래교육‘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교육부는 오프라인 교실에서도 어떻게 해야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지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그저 학생들은 컴퓨터 앞에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붙들어 놓을 명분만 마련하면 되는 것이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대한민국 교육의 기본은 ’통제‘인 것이다.
# 문제는 기기가 아니라 소통
아직 래포(rapport)가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 최소한의 질문과 답변, 피드백을 통해 조금씩 래포(rapport)를 쌓아 가는 과정이 중요했다. 구글 협업 문서로 모둠 활동을 해보고 싶었지만 학생들이 서로 모르는 상황이고 기기도 달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포기하였다. 학생들끼리 모둠 토론도 기술적으로 가능했지만 부담스러워했다. 실제 만나보지 않은 사이에 중간중간 끊기는 말로 토론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온라인 수업에서 소통이 일어나려면 오프라인 만남이 병행되어야 했다. 기술은 대면에서의 래포(rapport)를 뛰어넘지 못했던 것이다.
# 코로나와 입시의 싸움, 누가 이길까 ?
그러던 와중에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29 유행이 다시 대한민국을 덮치고 있다. 교육부는 5월 20일 등교 개학을 시행할 것이고 연기는 없다는 입장을 언론에 내보이고 있다. 아마도 대학들과 입시협의를 할 때 마지노선이 5월 20일이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사회의 분위기로 볼 때 확진자가 된 교사와 학생은 자신의 책임이 어느 정도든 간에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친 죄인이 되기 십상이다. 전반적으로 패배감에 젖어 있는 고3 학생들의 경우 자신들의 불운의 원인을 찾으려 할 것이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학생이나 교사가 표적이 될 것이다. 올해 만나는 학생들은 서로에 대해 알기도 전에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의 숙주로 서로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 고3 빼고 모두 원격 교육
5월 20일 무조건 등교, 12월 3일 이후 수능연기 없음. 대학 2월 29일 등록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목전에 둔 2020년 8월 25일, 수도권에 고3을 제외한 모든 교육활동이 원격으로 전환되었다. 역시 코로나보다는 입시가 무서운 모양이다. 이태원발 감염이 확산된 후 등교개학이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코로나보다 힘센 입시를 향한 열차는 출발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여러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교사들은 지역사회감염을 우려하여 등교 일정을 조정하는 플랜B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해당학교를 등교정지 시킨 후 다른 학교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실제로 등교의 이유로 불렸던 5월21일 모의고사 당시 인천에 확진자가 있어 해당 구 시험이 무산되었다. 상대평가인 입시에서 모의고사의 가장 큰 의미는 시험에 응시할 모든 학생을 미리 줄을 세워봐서 내가 몇 번째 줄어 서 있는 것인지 가늠하는 것이다.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열차는 출발해야 했던 것이다. 등교는 교육이 아니라 평가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교사들끼리 자조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12월 3일 수능이 미뤄질 수 없는 것은 대학이 2월 28일까지 등록금을 받아야 되어서일까?
# 온라인 교육과 평가
K-방역에 이어 교육의 선진화인양 자화자찬하지만, 온라인 개학이 ‘가능’하다고 여기게 된 가장 중요한 근거는 실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소위 말하는 ‘출결’이라는 이수기
준을 적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평가는 여전히 넘사벽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교에 나오자마자 모의고사를 보고 열흘 만에 중간고사를 본다. 이 말도 안 되는 행정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공교육 자체의 가장 큰 의미가 ‘평가’라는 것을 교사와 학생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등교개학과 방역은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가 ‘개별학습 -> 단순 지식 전달 -> 온라인 오프라인 수업차 미미 -> 가정학습 선택 -> 가정학습과 등교학습의 격차를 없애기 위해 등교해도 온라인 수업’이라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상호 소통하는 수업이 방역 차원에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등교하는 고3에게 등교개학 수업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더니 좋다는 의견은 절반을 경우 넘었다. 코로나 이전의 학교를 생각하며 막연히 학교를 그리워했지만, 막상 돌아온 학교는 이전의 학교와 전혀 달랐던 것이 아닐까?
# 코로나19 시대의 출결
공교육의 존재이유가 ‘학교라는 공간에 존재했음’이라는 증명이기에 온라인 개학에서도 ‘출결’이 중요했던 것처럼, 등교 개학 후 가장 많이 바뀐 것이 ‘출결지침’이었다. 아파서 3~4일 쉬기 위해서는 꼭 병원의 진단서가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의심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선별진료소 방문기록이 있어야 한다. 아프다고 그냥 쉴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 강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학생들이 방역지침을 지키기 어렵다는 인식은 학생들에게 거리두기를 ‘강제’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특히 중학교 이하에서는 쉬는 시간을 아예 없앤다든지, 거리두기를 하지 않으면 벌점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선 둘 ? 울산교육연대 토론회 ‘코로나시대 교육불평등심화, 어떻게 할 것인가?’
솔직히 매일 등교하는 고3 기준으로는 거리두기 지침은 무너졌다고 봐야한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수업시간에만 거리를 두는 척 하고, 식사만 조금 떨어져서 할 뿐, 학생들은 그냥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무증상 감염도 흔한 상황에서 어찌 보면 현재의 고3은 하루하루를 운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 코로나19가 교육에 질문하는 것
줄세우기 입시와 방역 사이의 모순, 공정한 경쟁이 존재한다는 신화부터 깨자. 결국 이 모든 모순의 핵심에는 입시가 있다. 모든 학생을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을 보게 하여 상대적이 등수를 내서 대학을 가게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동일한 조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면, 바로 입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체계와 결별해야 할 것이다. 또 이것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환상과 결별하는 일이기도 하다.
# 포스트코로나에 맞는 교육의 조건 ? 디지털 격차인가? 학습 권력의 이동인가?
지금까지 교육과정은 모든 학생이 평균적으로 도달해야 할 교육의 수준이 있고, 그 수준에 도달한 학생과 도달하지 못한 학생을 가르는 일제고사나 전국모의고사와 같은 시험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이 일상적으로 병행되는 상황에서는 초등부터 고등까지 전체 교육과정에서 도달해야 할 목표를 입시나 대학의 밥그릇이 아닌 학생 개개인의 목표로 재정의 되어야 하고, 이에 따라 교육과정이 다시 짜여야 한다. 학습방법의 개별화와 더불어 학습 목표와 단계의 개별화도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입안자?교과서-교사가 독점했던 배움의 권력이 진정으로 학생에게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학교 내 사회적 거리두기와 학교 환경
좌우1m, 즉 2m를 유지하라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실 학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학급당 학생수가 교육의 중요한 지표임을 생각한다면, 코로나19이후의 방역지침은 교실 크기의 지침을 제공한 셈이다. 학생들이 화장실에 몰리면 안되기 때문에 사람대비 말도 안되는 비율이었던 교사와 학생의 화장실 구분이 없어졌다. (학생들이 공용물건에 손을 대는 것이 방역지침에 어긋나기 때문에 공용공간 청소를 시킬 수가 없다.) 교실 이외에 학생 청소가 거의 사라졌다. 관행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없어져야 할 것
물리적 거리를 둔다는 것은 이전의 관계 압력 속에 무시되어왔던 개인의 자리를 돌리는 일이기도 하다. 왕따나 학생간 폭력의 위협에 시달렸던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을 더 ‘안전’하게 여기기도 한다. 학교에서의 통제적인 생활지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학생들도 현재의 상황이 이전보다 낫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인의 공간을 일상적으로 침해했던 방식의 생활지도는 코로나19 시대에 더이상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다.
여전히 무시되는 학생들의 목소리
모든 국민이 사회적 거리두기 준3단계로 대피체제에 들어간 가운데 고3 매일 등교가 강행되면서 고3도 원격으로 돌려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올라왔지만 어떤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다. 입시라는 역을 향해 달리는 열차에 불이익을 감수하고 내릴 것인가, 위험한 열차를 탈 것인가의 선택지만 남아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사회적 거리를 두라는 지시와 강제를 받는 존재이지 코로나 이후의 삶에 필요한 삶의 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주체는 아니다. 마스크를 빼고 이야기하면 벌점을 받고 사회적 거리를 두라고 감시와 지적을 당하는 존재인 것이다.
# 그들만의 복지와 민주주의
대학 정원보다 학생 수가 적은 상황에서도 전국의 학생들에게 줄 세우기 위한 시험을 정점으로 굴러가는 교육이 당연했던 이유는 교육을 통해 계층의 사다리를 통과한 사람들만 인간으로서 대접하는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환상일 것이다. 코로나19는 이제 그러한 체제는 불가능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아르바이트 물류센터에서 대량 감염이 일어난 것처럼 삶을 실질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지원이 존재하지 않는 한 바이러스는 약한 고리를 숙주 삼아 퍼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시에 통과하지 않은 사람도 모두가 안전하고 인간답게 일하고 쉴 수 있는 일터가 보장될 때 교육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이든 고용보험이든 안정적인 소득과 사회서비스의 공공화가 이루어질 때, 코로나 이후의 교육도 재화분배라는 왜곡된 기능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공공성 운운하지만, 결국 각자도생이었다.
우리 학교 샛강 건너편에 있는 국회도 폐쇄되었고, 전국민이 집콕하라는 메시지가 도처에 떠도는 가운데 5층에서 컴퓨터 앞에서 생기부 작성과 수능접수를 위해 컴퓨터에 코를 쳐박고 있고, 학생들은 마스크를 벗다가 쓰다가를 반복하며 교실에 앉아있다.
과연 청와대에 재택근무를 지시한 대통령과 전국민 집콕을 명령한 국무총리와 질본은 이렇게 복닥복닥 학생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상상이나 하고 있는 걸까? 만약 학교에서 코로나 걸려, 또는 옮겨 강제 재수한다는 학생들의 공포와 분노를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걸까?
※ 이 글은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조영선 교사의 토론회 발제문을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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