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4-28 17:11
[136호] 이달의 인권도서-『 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저 / 문학동네 2017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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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저 / 문학동네 2017 / 정리 : 이영환


동해안의 소도시 척주 인구 약 7만여 명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핵발전소의 유치를 둘러싼 반대측과 찬성측의 첨예한 대립으로 주민들의 갈등은 점점 고조된다.
주인공 송인화와 연관이 있는 진폐증이 있는 노인이 막걸리 음독으로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 주요인물 소개 >

? 송인화(주인공) :
어려서 동진에서 근무하던 아버지가 사고사로 죽고 다른 동네로 이주. 약대를 졸업 후 직장 생활 도중 윤태진을 만나 사귀고 아이까지 생겼으나 무뇌아 판정을 받고 갈등 중 유산을 하게 되고 결국 윤태진과 갈라서고 다시 척주의 보건소로 오게 되며 근무 중 서상화라는 공익근무 요원과 만나 서로에게 끌리게 됨.
? 윤태진 : 송인화의 전 애인. 중·고생일 때 척주 제일의 인재였으나 골탕(아스팔트 웅덩이)에 빠져 몸이 망가짐. 호르몬의 이상증세로 정상적인 신체기능 이상. 학업에도 영향을 미침. 탄광 사고로 죽은 광부의 아들.
? 서상화 : 약대를 다니고 있는 공익근무 요원. 동진에서 근무하는 하청 노동자의 아들. 아버지는 동진과 힘들게 부당노동행위로 싸우고 있는 해고노동자. 안경을 벗으면 시력과 균형감각을 잃는 증세가 있음.


< 내용 >

핵발전소를 유치하려는 전직 동진 사장인 현 척주 시장의 정책에 대해 척주 시민들은 찬?반 양쪽으로 갈려 대립하게 되고 송인화는 의약분업이 안되는 약국의 무분별한 약제 남용을 조사하게 된다.
예전의 탄광과 석회석을 기반으로 하는 시멘트 공장의 특성상 진폐 환자는 밭은 기침으로 고생하고 향정신성의 진통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약제 처방은 보건소의 감시를 요하게 된다.
동진 시멘트와 사이비 종교집단 ‘약왕성도회’, 그리고 핵발전소 유치를 둘러싼 지방 토호들의 이익이 맞물려 주민들의 의견을 왜곡하여 유치 건의서를 작성 정부에 요청하며 갈등이 야기된다.

비록 척주라는 조그만 소도시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사회의 갈등 요소를 그대로 대입 했다는데 의미가 있겠다. 비록 연애소설(?)이지만 ‘부당노동행위’, ‘강제 손·배소 및 가압류’, ‘주민 갈등 유발 및 부정한 행정(통?반장 및 이장을 통한 공갈 협박)’, ‘지역 토호 세력 야합(발주 물량 독점 및 용역 깡패 동원 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할 수 있지만 참는 것. 해도 되지만 참는 것. 하고 싶지만 참는 것. 그랬을 때 찾아오는 조금은 고통스러운 만족감의 맛을 윤태진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윤태진이 그만그만한 인간들에게 우월감을 느끼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했다. p82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시선들을 되받아치면서, 김순영을 보면서, 송인화는 이제 보건소 여직원 정기 모임에는 안 나오게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 때문에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김순영과 서먹해진다 해도, 무언가를 참는 대가로 얻었던 화기애애함과 편안함 대신 불편함이 찾아온다고 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때가 온 것인지도 몰랐다. p150

서상화의 손이 송인화의 손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송인화는 머리를 묻은 그대로 숨을 멈췄다. 서상화의 손은 놀랍도록 차갑고 축축했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맞닿는 순간 송인화는 자신이 다른 세계 하나와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서상화라는 세계. 송인화는 숨을 천천히 몰아쉬며 손에 힘을 주었다. p198

그날 서상화가 아빠의 얼굴에서 본 것은 멸시받는 게 만성이 된 사람의 표정이었다. 누군가가 일터에서 매일매일 오랜 세월에 걸쳐 인격적 모독을 당한다는 것. 그게 내 가족이라는 것. 그 사실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휘저어놓는지를 서상화는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먼저 느껴버렸다. p225

서상화는 그동안 왜 엄마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얼굴이 안 떠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서상화는 엄마가 필요한 나이를 한참 지났지만, 그래서 엄마에 대한 요동치는 감정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엄마가 보고 싶었던 어릴 적 순간들을 딛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아팠다. p235

인간을 가장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도 약이었고 순간적으로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약이었다. 척주 땅에서 시멘트보다 강하고 시멘트보다 독한 것. 완치 가능성 없는 인간들의 비명을 길들일 가장 강력한 진통제. p274

서상화가 테트라포드 사이에 빠져 죽고 약왕성도회의 이인자 안금자와 척주 시장 오병규가 구속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