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2-03 14:40
[133호] 이달의 인권도서-『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 김용옥 저 / 통나무 2019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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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김용옥 저 / 통나무 2019 / 정리 : 최귀선



신앙과 상식은 연속적이어야 한다. 그만큼 우리의 상식은 모든 이적과 초월과 신비를 포섭하는 것이다. 마가복음은 전 세계를 리드하는 21세기 조선종교혁명의 기점이자 종점이다.
- 도올 김용옥 -


도올은 21세기를 바라보면서 외친다. “기독교는 죽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했을 때에만 해도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살아 있었다. 기독교가 살아있다는 뜻은 교회가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신앙에 대한 강제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강제력이 사라지는 순간, 교회와 정치권력의 고리가 끊어지는 민주사회의 이상이 인간세의 원리가 되는 순간, 기독교는 더 이상 생명력을 지닐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종교적 진리에 관한 자율적 결정권이 개개인의 실존의 내면영역으로 옮겨지면, 기독교신앙은 더 이상 고뇌의 바위덩어리로서 우리의 사유나 행동을 짓누를 수 없다. 기독교가 죽었다는 것은 나의 외침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학의 문제를 나의 실존적 테제로서 부등켜안고 고민하는 이유는 한국 민중이 아직도 기독교를 껴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아직도 민중의 삶의 에너지의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이 가능한 곳은 오직 대한민국뿐이다. 아직도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될 수 있는, 신유박해 때와도 같은 에너지가 민중 속에 살아있는 문화적 토양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아직도 기독교는 대형의 교회조직을 유지하고 있고, 그 조직은 상권(商圈)과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반공이데올로기와 굳건하게 결합하여 있으며, 박근혜의 파면을 아포칼립스처럼 받아들이고 열심히 태극기를 흔드는가 하면, 조선역사의 중세기적 퇴행을 독력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The New Order 감각은 전무한 채, 오직 교회라는 조직의 권력·재정유지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교회사회악ecclesiastical social evils이 우리 시대에 만연하면 할수록 그 반성과 새로운 신념과 소망의 빛줄기가 강렬하게 빛을 발한다.

혁명성은 기존의 제도에 대한 항거라든가, 교리의 보정이라든가, 대형교회에 대한 항변 내지 부정의 담론에 있지 않다. 구악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혁명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바실레이아(하나님의 통치질서, 권능 ..)를 수립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궁극적인 의미는 예수가 한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며, 그 말씀에 담긴 뜻에 따라, 그 가치를 구현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일 게다. 그러기위해서는 우리는 예수가 하신 말씀을 알아야 한다.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의미가 정확히 통하도록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예수가 하신 말씀을 적어놓은 성경을 읽어야 한 다. 마가복음이 마태?누가복음의 원형이라는 사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복음서 문학양식의 최초의 형태라는 사실, 그러기 때문에 마가복음에는 사전의 뽄model이 없는 창조의 고통이나 절박감, 질박한 개척자의 언어감각이나 소박한 시대성의 반영이 보다 절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으로 족하다.

마가복음은 최초의 복음서이다. 마가복음으로써 최초의 복음서 문학양식이 출현한 것이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삶에 관한 가장 오리지널한 기록일 수 밖에 없다. 마가복음은 신약성서 27편 중 가장 질박한 오리지날리티를 보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가복음은 신약성서 27편의 핵이다.

마가의 예수야말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 예수”(신학계에서는 같은 말이지만 “역사적 예수 Historical Jesus”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는 “인간 예수”일 수밖에 없고 “인간 예수”는 “역사적 예수”일 수밖에 없다)의 원상(原相)을 가장 정직하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