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3-31 20:16
[147호] 여는 글 - 어김없이 봄은 온다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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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봄은 온다

이영환


며칠 전 큰애가 거주하고 있는 사택에 문제가 있어 자잘한 몇 가지를 고쳐주고자 대전에 다녀왔다. 오고 감에 KTX를 이용하니 시간도 절약되고 차창 밖으로 새삼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는 녹색의 변화가 있었다.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고 싶은데 조금만 가면 터널이고 또 조금만 가면 터널이다. 할 수없이 들여다 본 휴대폰에는 거의 모두 4.7 재보선 이야기가 메인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한 내용이 생각났다. 여전히 살아있는 위력 앞에 너무 힘들다고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겠으나 한마디로 2차 가해의 중단과 피해자에게 사죄를 하라는 것이었다.
집권여당에게는 치명적인 아픔일 수 있겠으나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피해호소인’이라는 신조어를 생산해 두둔하는 인상을 준 인사들의 진심어린 사죄가 없었고 거기에 더해 박 전시장의 업적을 이야기하는 여권 인사들의 언행에서 느꼈을 분노를 생각하면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음모론도 있는 모양인데 3월 8일 발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는 피해자가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임을 담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더 이상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일련의 모든 행위가 중지되어야 하고 피해자가 원하는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국가기관이 나서서 보호 지원 되어야 할 것이다.

채근담에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하라고 나와 있다. 평생의 경구로 삼을 내용이다. 남은 부드럽게 대하고 나는 스스로 엄격하게 돌아보고 행하니 어찌 화가 미칠 것인가? 586세대가 어느새 기득권이 되어 타파하고 청산해야 했던 적폐가 되어버리지는 않았나? 스스로 고민하고 되돌아보고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시점이다. 어느 위치에 있던 푸르른 젊은 날의 기상으로 사회 변혁을 추구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내 주위를 돌아보고 다시금 신발 끈을 단단히 조이고 나아가야 이제까지 일궈왔던 사회의 변화를 지켜내고 한걸음 더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이번 선거에서 보게 된다.
봄은 모든 만물의 소생을 노래한다. 소생이란 아픈 것을 치유하고 죽은 것을 살려내며 스러져 가던 기운을 북돋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이 뒤섞여
잠든 뿌리를 뒤 흔든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갸날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렸다

- T.S. ELIOT 의 황무지에서


요즘은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로 연일 외신이 떠들썩하다.
우리네의 1980년과 비슷하다고 혹자는 말한다. 인권이 유린되고 자유가 억압당하며 인명이 살상되는 일련의 상황은 5월의 광주를 떠올리게 한다. 너무나 참혹하고 아픈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은 현대사의 한 페이지다. 아무쪼록 국제사회의 연대와 압박으로 미얀마의 봄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하며 더 이상의 인명 피해가 없기를 소망한다.

오늘은 인권의 감수성이 풍부해져 따로 인권을 언급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며 인권운동연대가 필요 없는 일상이 되기를 꿈을 꿔 본다.

※ 이영환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편집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