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7-01 10:29
[162호] 시선 - 제12회 군산으로 떠나는 인권평화기행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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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군산으로 떠나는 인권평화기행

한주희


‘행복했다’라는 말이 며칠 계속해서 입에서 나왔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서둘러 신복로타리로 향했다. 물론 발걸음이 너무너무 가벼웠다는 사실과 함께... 이유 불문하고 여행은 떠나기 전 설레는 마음과 도착하기 전 아쉬운 마음은 여행이 마무리되기 전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오교수님께서 잠깐 지각을 하셨지만, 이는 여행의 설렘이 잠을 설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한 늦잠이 지각을 하게 만든 것이 아니였을까 하는 추측도 해본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여정은 시작되었다. 각자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군산에 도착하기까지 소요되는 4시간을 보냈다. 난 조금 부족한 잠을 작은 담요와 목베게에 의존해서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보냈다. 편안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군산도착과 동시에 유락식당의 반지(밴댕이)회덮밥에 아구탕이나 아나고탕으로 각자 선택한 메뉴에 맞춰 허기를 달랬다. 기행의 첫 방문지는 군산항 뜬다리 부두(부잔교)이며 군산시 문화해설가도 만났다. 부잔교는 일본이 수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설 중 하나로 당시 미곡 수탈의 중심지라고 했다. 이 시설로 1934년에만 200만 석의 쌀이 실려 나갔다고 한다. 현재는 부잔교의 일부만 남아 있다.
해설사를 따라 다음은 초원사진관으로 이동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여름에 눈 오는 풍경 촬영을 소금으로 연출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다음은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들을 수탈하면서 얻은 부로 지은 일본식 가옥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군산의 일본인은 고급 주택을 지어 편안한 삶을 살았으나, 우리 한국인들은 일제의 강제적 수탈에 시달리며 갖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 가옥은 목조 2층 건물로 현재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 많은 한국영화가 이 주택에서 촬영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고 했다.
다음은 동국사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이며, 대웅전은 건축 자재를 일본에서 가져와 지었으며, 우리나라 전통 사찰과 달리 승려들의 거처인 요사와 복도로 연결된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경내에는 2012년 9월 16일에 일제의 만행과 자신들의 첨병 역할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참사문(참회와 사죄의 글)을 음각한 비석이 왼쪽에는 한국어 번역문과 오른쪽에는 일본어 원문이 새겨져 있다. 그 앞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국사에서 문화해설사와 작별을 하고 다음 기행해설사인 평화바람의 오이 활동가를 만나러 군산평화박물관으로 향했다.

군산평화박물관은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시민과 연결하는 박물관, 평화 운동을 기억・기록하고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박물관, 평화라는 가치를 전시하고 확산하는 박물관, 평화를 위해 싸우는 세계 민중과 연대하는 박물관”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2021년 7월 17일 군산 근대문화의 거리에 문을 열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군산에서 특히 평화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관람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상설전시를 열고 있다고 한다. 오이 해설가님의 열정적인 해설은 평화를 얼마나 갈망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보였다.

다음은 미 공군 군산기지이다. 이 기지의 전신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다치아라이 비행학교이다. 해방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확장되어 오다가 현재는 서해안 전쟁밸트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했다. 비행장 규모는 전보다 점점 확장되어 둘레만도 8㎞에 달하고 면적은 1,034만 8,063㎡에 이르는 규모가 되었다고 한다. 직접 들어가서 볼 수는 없었기에 차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탄약고 안전지역권 확보를 내세워 진행된 강제토지수용으로 주민들이 쫓겨난 후 없어진 하제마을인데 이곳에는 하제마을을 지켰던 600년 된 팽나무만 남겨져 있었다. 하제마을을 끝으로 오늘의 기행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하제마을 근처의 삼거리식당정육점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숙소인 유로빌리지로 향했다. 기행의 피로를 간단한 음주로 풀었다. 난 이날 평생동안 웃을 웃음을 웃은 듯한 행복한 일정의 마무리 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은 인권연대의 쉐프들의 맛난 해물라면으로 해장하고 마지막 일정을 시작하였다.
장소는 새만금이다. 기행 해설은 구중서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이 해주셨다. ‘새만금’이란 전국 최대의 곡창지대인 만경평야와 김제평야가 합쳐져 새로운 땅이 생긴다는 뜻으로 만경평야의 ‘만’(萬)자외 김제평야의 ‘금’(金)자를 따서 새만금이라 지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새만금 개발과 새만금 신공항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평화단체와의 접점 없이 갈등만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새만금은 해수유통이라는 중요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해수유통을 통해 새만금의 생태계를 복원하고, 자연 갯벌을 되살릴 수 있는 곳이 새만금 신공항 부지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헛된 토목 사업과 군사주의 팽창을 가져올 새만금 신공항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평화바람은 외치고 있다.

1박 2일 일정의 마무리로 어가생선구이에서 점심을 먹고 울산으로 향하는 길에 마이산을 잠깐 보고 갈려고 하였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마이산 근처에 이르니 갑작스러운 폭우에 걸어 볼 기회가 없어졌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울산으로 향했다. 짧지만 긴 시간 같은 1박 2일의 마무리와 동시에 다음 인권기행을 기대해 본다.
참 참가자에게 기행선물로 주신 생선 박대는 구이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주희 님은 울산대 인권법학연구센터 연구위원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