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2-25 14:10
[158호] 시선 둘 - 된장국과 식용유의 조화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3,289  

된장국과 식용유의 조화

이현숙


혹시 여러분들은 된장국과 식용유의 조화를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된장국과 식용유가 어떻게 만나서 맛있는 음식이 되는지 궁금하죠,,,
저에겐 추억의 맛있는 음식이랍니다. 먹을 것이 풍요롭지 않은 저의 어린 시절엔 이 음식이 별미였어요. 제가 직접 만들어서 먹어 보지도 않았고, 다른 어디에서도 먹어 본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요즘 같이 먹을 것이 많고 풍요로운 세월에 굳이 이 음식을 만들어 먹을 필요는 없겠죠. 풍요로운 삶이 반드시 영혼까지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 즉 국가별 GDP Top 10입니다. 어느새 한국이 상당한 경제성장을 한 것이지요. 그에 따라 우리의 음식문화도 가난한 예전의 음식문화와 크게 달라졌습니다.
저는 1964년 대부분의 주민이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아직도 그곳은 시골이랍니다. 다행히 7세 되던 해에 좀 나은 도시로 나올 수 있어서 조금은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농사짓는 것이 전부인 시골에서 제가 어떤 음식을 자주 먹었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기껏 해 봐야 과일은 단감, 홍시 정도인 듯하고, 생선과 고기는 사치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저보다 훨씬 늦게 도시로 이사 나온 고향 친구의 말을 들으면 고향에 살 때 먹을 게 없어서 겨우 끼니를 해결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시골에 가도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렸고, 과일도 다양합니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사 먹을 수 있고, 많은 사람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 빈곤자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 저는 풍성한 밥상보다는 아주 소탈한 밥상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문득 어린 시절에 좋아한 음식이 떠올랐습니다.
전 초등학생 때 우리 마을과 좀 떨어진 작은 산에 작은 암자를 지어서 사는 이모집에 자주 갔습니다. 말은 공부하러 간다고 하면서 실상은 놀러 가는 것이었죠. 암자에 가봤자 이모 혼자 있었는데,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어린 초등학생이 산길을 혼자서 걸어 이모집에 왜 갔는지 지금은 이해가 가지는 않습니다. 여하튼 전 자주 갔습니다. 동네에 놀 친구도 많았는데,,,
이모는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서른이 넘어서 출가하여 통도사, 내원사에서 승려 생활을 오래 하다가 우리 동네의 작은 산에 암자를 몇 달에 걸쳐 지어서 살았습니다. 이모 혼자서 흙집을 짓는데, 어린 손으로 저도 도운 기억이 납니다. 흙으로 일일이 블록을 만들어 말려서 집 벽을 만들었지요. 이모는 가난한 스님이었어요. 당연히 밥상은 항상 소탈했습니다.

그런데 밥상에 올라온 반찬 중에 저의 마음을 빼앗은 게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된장과 식용유의 조화를 이룬 된장국이었습니다.
아마 스님들은 불교의 계율상 육류 같은 것을 못 먹다 보니 지방을 섭취할 방법이 없었겠지요. 특히 당시에는 가난한 시절이었으므로 지방, 단백질 등을 쉽게 섭취할 수 있을 만큼의 음식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바나나 반 조각만 먹어도 부자 된 느낌이고, 봄이 아니면 딸기도 못 먹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이모는 식사할 때 자주 감자를 썰어서 넣은 멀건 된장국에 식용유 한 방울을 떨어뜨려 넣었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보지 못한 광경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부자는 아니었지만, 매일 나름 풍족한 밥상을 차렸습니다. 전 이모에게 물었지요. 왜 식용유를 넣느냐고,,,
이모는 지방 섭취를 위해서 넣는다고 하였습니다.

참 지혜로운 듯했습니다. 먹을게 넘쳐나는 요즘은 식용유가 몸에 나쁘다고 가능한 먹지 말라고 하던데,,,전문가들이,,, (그럼 왜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어요!!)
여하튼 난 이모가 만든 된장국이 어찌나 맛이 있든지,,, 어른이 되어서도 한 번씩 이모 집에 가면 그 된장국을 먹기 위해서 일부러 저녁까지 먹고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반드시 영양가가 높고 비싼 음식이라야 맛있는 것도 아니고, 정신적으로 위안을 받는 것도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식용유 섭취를 지양하라고 하는 전문가의 조언이 남발하는 가운데, 저는 얼마 전에 일본 요리 프로에서 스테이크를 굽는데 한 층 맛을 내기 위하여 식용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굽는 것을 봤습니다.
게다가 또 다른 요리전문가로부터 된장국을 끓일 때 식용유 몇 방울을 넣으면 더욱 감칠맛이 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순간 전 스님들의 지혜가 민간에 전해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모집에 자주 놀러 간 것이 그 된장국 때문인지 외롭게 사는 이모를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이 풍요로운 시절에 염증이 느껴지면 그 소탈한 된장국이 생각난답니다.
어쩌면 저의 어린 시절이 너무 그리울 때 그 된장국도 소환되는 추억일까요.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 이현숙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