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1-03 13:45
[156호] 여는 글 - 백신패스와 인권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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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패스와 인권

박영철


연말을 맞아 1년 동안 고생했던 위원들과의 식사모임이 열렸다. 위원으로 위촉된 이래 1년이 지나도록 식사는커녕 회의할 때조차 마스크를 내리지 못해 제대로 대면한 적도 없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를 맞이하여 1년간의 활동도 격려할 겸 겸사겸사 마련된 반가운 자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비수도권이라 식사모임이 8인까지 가능하지만, 12월 13일부터는 백신패스 제도가 확대 적용되어 미접종자는 1인만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의를 준비하던 실무자는 부랴부랴 위원들의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였고, 다행스럽게도 참가예정자 중 1명만이 미접종자라 모임이 가능하다는 통지를 했다.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미접종자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식당 출입에서 배제된다는 것이 영 개운치가 않다.
미접종자였던 위원은 백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체질이기에 접종할 수 없었음을 밝혔다.
의학적인 사유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특히 백신 부작용에 대한 공포는 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괴담(?)으로 떠돌고 있다.

실제 정부가 직장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위드 코로나 설문조사’결과에서도 자녀가 있다면 12~17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을 시키겠느냐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접종시킬 것이라는 응답이 22.6%, 절대 접종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17.3%로 나오고 있어 백신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2월부터 적용될 아동청소년에 대한 백신패스가 가져올 혼란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거리두기와 사적모임 금지 등 기존의 방역지침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감염병 예방을 위한 방역 조치를 하는 것인데 반해, 이번 방역패스 확대적용은 모든 시민이 아닌 백신접종여부를 기준으로 미접종 시민을 배제하는 방식이다. 백신 미접종자는 사람도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넘쳐난다. 미접종자도 대한민국의 시민일 터인데 어떠한 근거로 기본적인 권리가 제한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앞선다. 백신접종은 시민의 의무인가? 일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어떠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으며, 무엇을 기준으로 어떠한 법적 근거를 토대로 백신패스 적용 대상 시설을 확대했는지 그리고 그 근거는 정당했는지, 정책 시행에 따른 피해보상 대책은 진지하게 고려되었는지 되묻고 싶다.

'위드 코로나' 시행 이후 코로나19의 확산은 어쩔 수 없는 결과다. 따라서 코로나19와 함께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대안을 마련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책을 수용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위드 코로나'로 전환했던 영국, 싱가포르 등의 사례에서 보이듯 확진자 증가는 막을 수 없는 현상이다. 매일 수만 명씩 확진자가 발생하는 가운데서도 마스크 없이 축구경기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결국 '위드 코로나'는 방역의 승리가 아닌 패배를 시인하고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적극적 표현이라는 말도 있다.

11월 1일 ‘위드 코로나’는 ‘단계적 일상회복’이란 이름으로 시행되었다. 코로나와의 공존을 강조하고 있는 ‘위드 코로나’와는 달리 대한민국에서의 ‘위드 코로나’는 일상회복을 위해 단계적으로 규제를 줄여간다는 인식이 앞선다. 코로나와의 공존을 위해 의료체계 정비, 사회적 인식의 전환 등 적응을 위한 준비과정을 통해서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것이 아니다.
정부의 코로나 대응 정책은 ‘위드 코로나’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확진자 수를 줄이기 위한 규제에 맞춰진 시스템으로 맞서고 있다. 높은 백신 접종률을 근거로 코로나 확산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시작된 측면이 강하다.
12월 들어서면서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 1만 명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위드 코로나’가 성급했다는 성토부터 다시 한번 강하게 방역 조치를 해야 한다는 주문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매서운 추위만큼 민심이 냉랭하다. 결국,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꺼내든 칼이 문제의 ‘백신패스’ 확대시행이다. 적용대상이 고위험 다중이용시설 즉 감염 위험도가 높은 유흥시설과 목욕장업, 실내체육시설 등에서 실내 다중이용 시설로 확대되었다.
문제는 정책 시행의 정당한 근거제시를 통한 사회적 합의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실무적 준비도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 시행된 점이다.

그동안 방역지침에 따라 사용하던 수기명부와 안심콜 사용은 무의미하고, 오로지 접종 완료 확인을 위한 QR체크만 가능하다고 한다. 계도기간 1주일로 혼란을 막기에는 태부족이다. 위반사례를 적발할 수 있는 기반도 취약하다. 그래놓고 위반하면 과태료가 무려 300만 원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장사도 안 되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꼴이 되고 있다. 뒤늦게 방역패스단말기 지급 등을 검토한다고 하지만 이미 때를 놓친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하는 생명과 안전에 대한 대응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방역지침의 수립과 시행은 반드시 정당한 근거와 최소한의 제한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서, 방역지침이 혹여 인권침해 여지는 없는지 고려되어야 한다. 유엔 사무총장은 ‘코로나19와 인권’ 정책 문서를 발표하며 “모든 긴급 조치는 적법하고 비례적이며 필요하고 비차별적이어야 하며, 특정한 초점과 기간을 가져야 하고 공중 보건 보호를 위한 가장 덜 침해적인 접근을 취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의 방역 조치도 이러한 인권 기준에 맞춰 평가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정부의 방역지침은 무소불위의 기준이 아니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 끊임없이 검토되고 수정되어야 한다. 방역이란 이름으로 어디까지 용인되어야 하는지 질문이 멈춰서는 안 된다.

※ 박영철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