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6-30 11:34
[174호] 인권포커스 - 기업의 인권 실사 의무화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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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인권 실사 의무화

최한석


기업이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주체인가?
전통적으로 인권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개인의 침해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와서 국가만큼 기업의 영향이 커짐에 따라 기업의 활동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과 인권 또는 인권경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기업이 인권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인권경영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인권경영에 대해 가장 영향력이 있고 대표적인 국제규범은 2011년 UN 사무총장 특별대표였던 존 러기가 만든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이다. 존 러기는 기업과 인권에 대해 국가의 인권 보호 의무, 기업의 인권존중책임, 구제에의 접근이라는 3대 원칙을 제시했다. 국가의 인권 보호 의무는 기업이 인권존중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정책, 법률, 규제, 판결을 통해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의 인권존중책임은 기업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을 것, 자신이 개입된 부정적 인권 영향에 대해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제에의 접근은 기업에 의해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 피해당한 당사자에게 사법적, 비사법적 구제를 해야 함을 의미한다.

인권경영을 실현하는 수단은 ‘인권 실사’다.
인권 실사의 영문표기는 ‘Human Rights Due Diligence’다. 실사(Due Diligence)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사업에 있어 의사결정 이전에 적절한 주의를 다하고 소정의 절차에 따라 조사행위를 하는 것으로 ‘선관주의 의무’ 또는 ‘상당한 의무’로 해석되며, 기업 법무에서는 기업의 인수 합병에 따르는 위험 또는 문제점들을 인수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파악하는 절차로 이해된다. 기업은 인권경영을 위해서 ‘인권 실사’를 해야 하는데. 인권 실사는 기업 스스로 자신의 활동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지 미리 살펴보고 그럴 소지가 있으면 그 점을 고려해서 경영함으로써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고 그러한 활동의 진행 상황과 결과를 공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권 실사의 특징은 기업이 자신의 활동에 대해 스스로, 사전예방적으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절차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기업은 이를 위해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하고, 평가의 결과를 경영에 반영하며, 경영의 결과가 효과적인지 평가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해 이해관계자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인권경영의 주체는 기업이며, 인권 실사를 비용을 들여 수행하는 것도 기업이다. 인권 실사가 이행되는 초기에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인권경영과 인권 실사를 수행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도입되었다.

인권 실사가 법으로 강제되다.
사실 기업이 인권존중책임을 다하기 위해 인권 실사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까다로운 일이다. 따라서 아무리 존 러기의 이행원칙이 좋다고 한들 기업의 입장에서 이를 자발적으로 이행해야 할 이유가 없고, 실제로 확산속도가 매우 더뎠다.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인권존중책임을 강제적으로 수용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왔다. 이미 EU를 중심으로 ‘인권 실사’를 법률로 도입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는 2017년부터 실사의무법이 도입되었으며, 독일도 올해부터 공급망 실사법이 적용되고 있다. 다른 나라가 하니 우리도 하자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른 나라의 실사법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공급망을 포함한 인권 실사로 확대되다.
‘공급망’이란 개념은 기업 자체로 인권을 지키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원료와 자재를 공급해 주는 곳, 기업이 만든 제품을 사용하거나 판매하는 연관된 회사, 기업의 하청업체, 협력업체까지 인권존중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즉 대기업은 자신과 자신의 연결된 업체까지 인권 실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의 공급망 실사법에 의해 독일 시총 20대 기업과 거래하는 우리나라의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 현대모비스 등 163개 기업이 인권 실사를 수행해야 수출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인권 실사법 제정은 발등의 불
2022년 12월 11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인권 실사’와 관련한 중대한 법안이 발의되었다. ‘해외자원개발사업법 개정안’인데, 내용은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와 같이 ‘분쟁 및 고위험 지역’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해외자원개발사업을 하려면 인권과 환경에 대한 실사(due diligence)를 해야 한다는 의무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권 실사를 의무로 도입하는 최초의 법안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모든 기업에 대해 인권 실사를 의무로 도입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인권 실사법은 기업이 인권을 존중하고,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정의와 구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다. 인권 실사법 제정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종이호랑이가 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해를 야기하면서 이를 은폐할 수 있는 새로운 그린워싱(greenwashing)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법안 제정과정에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인권운동연대 회원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 최한석 님은 진보당 울산시당 정책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