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 법학
-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지구중심주의로 -
강금실 외 7인 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0 / 정리 : 배미란
# 지구법학의 정의 #
인간은 더 넓은 존재 공동체의 한 부분이고, 그 공동체에 속하는 각 성원의 안녕은 전체로서 지구의 안녕에 의지한다는 사고에 토대를 두고 있는 ‘법과 인간 거버넌스’에 관한 철학
“지구법학(Earth Jurisprudence)은 21세기 초에 새로 제안된 법과 거버넌스의 전환 이론이다. 현재의 법체계가 산업문명이 초래한 전대미문의 생태위기를 막지 못했고 도리어 심화·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법적 권리주체의 측면에서 인간만을 상정한 현재의 법체계를 넘어 지구상의 생명체계로 범주를 넓혀서 법의 틀을 새로이 구성해보자는 것이 그 핵심 요지이다.”<서문 중에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부 지구법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지구법학의 토대를 제시한 토마스 베리(Thomas Berry)의 지구법학론에 관한 소개(제1장 지구법학의 사상적 기원 : 토마스 베리의 지구법학론)와 국내에 처음으로 지구법학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야생의 법 : 지구법 선언』(Wild Law : A Manifesto for Earth Justice)의 저자 코막 컬리넌(Cormac Cullinan)이 주장하는 ‘야생의 법’에 관한 소개(제2장 지구법학과 야생의 법 : 생명 공동체의 거버넌스), 그리고 지구법학 논의에 있어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지구권을 종래의 자연의 권리(Right of Nature)에 관한 논의와 연결지어 구체적 판례와 입법례 등을 소개(제3장 지구법학과 자연의 권리)하고 있다.
그리고 ‘제2부 지구법학과 국제사회’에서는 국제시민사회에서 지구법학이 확산되어온 과정과 유엔에서 지구법학 활동이 받아들여진 배경, 그리고 유엔에서의 지구법학 활동 등에 관한 기본적인 소개(제4장 지구법학과 유엔 그리고 국제시민사회)와 함께 유엔의 하모니 위드 네이처(HwN)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자연의 권리를 위한 국제연맹(Global Alliance for Rights of Nature)’이라는 단체에서 2014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국제 자연의 권리 재판소’에서 다룬 다양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제5장 국제시민법정에 선 자연의 권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3부 지구법학의 적용’에서는 인간 중심, 산업 내지 소비중심의 기존 법체계에서 벗어나 지구법학에 바탕을 둔 법과 법학을 필요성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으로 헌법 패러다임 전환의 문제(제6장 지구법학과 헌법)와 새로운 시각을 담은 경제법(제7장 지구법학과 경제법)에 관해 논하고 있다.
조금 더 안을 들여다보면, 지구법학론을 제시하고 있는 토마스 베리는 우주는 물리적-물질적 실재이자 동시에 정신적-영적 실재로서, ‘우주와 지구가 실재와 가치의 원천’이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인간의 법학은 인간의 천부적 존엄성의 우위만을 논하고 있으나, 실제 단일한 지구 공동체 안에서는 인간은 물론 자연물도 존재 이익을 가지며,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고유한 역할과 존엄 그리고 내적 자발성을 갖는다고 본다. 그리고 베리가 지구법학에서 활용하는 ‘권리’ 개념은 법률가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법익의 차원보다는 더 넓은 개념으로서 ‘지구 공동체 내에서 모든 존재가 자신의 기능과 역할을 실현할 자유를 가지는 자격’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발상을 바탕으로 베리는 우리 인간의 법과 거버넌스는 전체로서의 지구와 지구 모든 성원의 안녕을 보호하도록 의도해야 하며, 인간이 지구 공동체의 참여 구성원으로 지구에 존재하는 시기인 생태대(Ecozoic era)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주가 “객체들의 집합이 아닌 주체들의 친교”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변호사인 코막 컬리넌이 제시하는 “야생의 법”은 지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행성 지구와 지속적인 공진화 속에서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유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규율하는 법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인간종의 법체계로서 법의 한 분야라기보다 인간 거버넌스에 대한 접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코막 컬리넌 역시도 오늘날의 심각한 생명 파괴 현상은 법의 원천이 인간에게 있다는 그릇된 망상에 따른 것이며, 이를 극복하고 법학과 거버넌스 체계의 근본 방향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면서 생태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상업적-산업적 신화에 대항하여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지구법학과 자연의 권리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기만 하지만, 이미 에콰도르를 비롯한 다수의 나라에서는 헌법과 법률로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우리 헌법재판소 결정례 등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감지되고 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도 지구법학의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새로운 대안적 세계관으로서 지구법학을 채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국제시민사회의 노력으로 2015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지구법학’이라는 용어가 유엔 공식 문서에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엔으로 하여금 구속력 있는 법원(法源)으로서 지구법학의 가치를 채택하도록 하는 일은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이 책의 모든 저자는 말한다. 인간중심주의와 신자유주의, 산업화와 상업화에 빠진 현재의 법체계가 우리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우리 눈앞에 놓인 생태위기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법학에 토대를 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일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꿈꾸고 말하고 행동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 보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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