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일본 교토, 2022년 울산 동구
이선이
2009년 12월, 어느 단체에 소속된 시민들 수십 명이 한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이들은 학교 앞에서 확성기를 틀고 외쳤습니다. “이 녀석들은 밀입국의 자손”, “범죄자로 교육받은 아이들”, “이 학교를 우리 땅에서 내 쫓아라”. 이들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모였고, 시내를 행진하고 집회를 개최하며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빼앗은 비열한 학교를 용서하지 않겠다.”, “이 학교에 왜 우리 세금을 내야 합니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이 장면을 어디서 많이 보았다 싶으시겠지만 ’일단‘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은 일본 교토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회」라는 단체의 회원들이 ‘교토조선 제1초급학교’ 앞에서 벌인 일이지요. 이 단체는 일본에서 혐한시위를 주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시내 한가운데서 집회를 열고 “조선인은 위험한 존재”, “한국인을 다 죽이자”, “한국여자 강간하자” 따위의 혐오 발언을 쏟아냅니다. 이들의 가장 ‘대표적인’ 활동이 바로 위 교토 조선학교 앞에서의 시위였는데요, 조선학교가 불법으로 나라 땅을 사용하면서 세금을 축내고 있으며, 이들은 범죄 집단이고 일본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활동’에 대해 일본 사회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우선 위 조선학교 사건의 경우 일본 법원은 이들에게 학교 주변에서의 시위활동을 금지하는 가처분을 결정하였고, 나아가 학교 구성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멈추지 않자 오사카 시에서는 2016년에 ‘헤이트 스피치 억제 조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대학교수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심사회에서 특정 발언을 헤이트 스피치라고 판단하는 경우 발언 내용과 발언자, 단체 이름을 공개한다는 내용입니다. 2019년에는 “조선인은 범죄 민족”, “일본에 필요 없다.” 등의 발언을 한 ‘조선인이 없는 일본을 목표로 하는 모임’ 대표의 실명이 처음으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 한다”고 주장하면서 위헌소송을 냈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인종이나 민족 등을 이유로 차별을 유발하는 표현은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합헌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와사키시에서는 외국인이나 외국 출신자들에게 ‘살고 있는 곳에서 나가라고 요구’하는 차별 발언을 반복하는 경우 벌금형까지 부과할 수 있는 조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들이 혐한 집회를 열 때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일본 시민들이 이들의 무차별적인 혐오발언과 차별조장에 반대하는 집회를 개최한다는 것입니다.
2009년 일본의 교토를 보면서, 2022년 울산의 동구를 생각합니다. 지난 1월 말, 아프가니스탄 난민(정확히는 특별기여자) 가족들이 울산 동구에 정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들이 탈레반 정권을 피해 극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서 우리나라로 왔을 때는 대부분 따뜻하게 환영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막상 내가 사는 지역에 정착하고,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입학하고, 내가 다니는 공장에 취업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슬람 사람들은 여자들을 때리고 강간한대”, “왜 우리 세금으로 저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해?”, “우리 아이들 불안해서 어떻게 학교에 다녀?”,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은 다른 학교로 가면 안 돼?”. 이런 말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가고, 언론에 보도되고, 국민청원에까지 나옵니다. 위에서 살펴본, 조선학교를 향해 극우 일본인들이 내뱉었던 혐오발언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하면서 옹호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2009년 일본 교토가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일본 법원은 조선학교 사건을 인종차별이라고 보았습니다. “재일조선인이 과거에 일본사회에 악행을 행하였고, 현재도 일본사회에 해악을 초래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재일조선인을 혐오하고 일본인보다 열등한 지위에 두어야 한다거나, 혹은 재일조선인 등은 일본사회에서 사라져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은 인종차별이라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도 그동안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 없는, 우리 사회에서는 굉장히 낯선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가?” 2009년 일본 교토와 2022년 울산 동구를 생각해보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서로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선이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부설 인권교육센터 소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