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끝이 당신이다
- 주변을 보듬고 세상과 연대하는 말하기의 힘 -
김진해 저 / 한겨레 2021 / 정리 : 최귀선
20년 넘게 학생들에게 언어, 의미, 글쓰기, 책 만들기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살고 있는 작가가 원고지 4장, 800자 이내, 제목은 7자 이내, 주제는 말과 글이라는 조건으로 <한겨레> ‘말글살이’에 매주 쓴 칼럼에서 가려 뽑아 엮은 책이다.
첫 번째 쓴 칼럼인지 엮으면서 배치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첫머리에 배치된 무슨 내용일지 호기심 가득 품게 되는 ‘말끝이 당신이다’라는 일곱 글자가 이 책의 제목이다.
문 뒤에 숨은 먼지를 쓸어 담지 않았다면 청소를 제대로 한 게 아니다.
청소의 성패가 마지막 먼지에 달려있다면, 말의 성패는 말끝에 달려있다. 조사나 어미처럼 말끝에 붙어 다른 단어들을 도와주는 것들은 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 특히 어미를 어떻게 쓰는지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 성격, 타인과의 관계, 지위가 드러난다.
친할수록 어미를 일그러뜨려 쓰거나 콧소리를 집어넣고 사투리를 얹어놓는다. ‘아웅, 졸령’ ‘언제가남!’ 친하지 않으면 ‘-습니다’를 붙인다.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봤자, 용기가 흘러넘치던 학생한테서 받은 ‘죄송한데 사유는 비밀이고 오늘 수업 결석하겠습니다’가 친밀함의 최대치였다. ‘패랭이꽃도 예쁘게 피고 하늘도 맑아 오늘 결석하려구요!’라는 메일을 받는 게 평생소원이다.
세월이 지나면 말끝이 닳아 없어지기도 한다.
‘어디?’ / ‘회사’
‘언제 귀가?’ / ‘두 시간 뒤’.
말끝이 당신이다.
‘짝퉁 철학자’ 되기 본문 첫 문장 ‘당신에겐 어떤 문장이 있는가?’라는 강렬한 물음을 던진다. ‘1부 말의 심장’ 부제처럼 쓰고, , 책의 뒷면 추천사의 제목처럼 써 또다시 강조하기 때문일까? 제목보다 더 강하게 와 닿는다.
이어진 ‘당신에게 쌓여있는 문장이 곧 당신이다.’라는 말은 순간순간 재미를 추구하고 하루만 지나도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나에게 나는 난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나에겐 어떤 문장이 있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저지레하는 아이들을 보며 어른들이 입을 데거나 걱정을 하면, 자식을 여덟이나 키우고 손주 여럿 본 울엄마가 했던 말. 어떻게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학생들을 마주할 때 떠올리며 내 마음을 다잡는 말. ‘짝퉁 교육자’ 되기 문장.
“아~들은 열두 번도 더 변한다.”
이문재 시인은 추천사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분, (그래서) ‘말 같지 않은 소리’는 절대 하지 않는 분, 사투리는 없애고 표준어를 써야 한다고 외치는 분, 사전은 국가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 언어를 순화 대상이라고 여기는 분, 청년들이 주고받는 신조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 이런 분들은 이 책에다 ‘불온서적’이란 딱지를 붙일지도 모른다며 이런 분들께는 굳이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고, 말실수 때문에 잠 못 이룬 적이 있는 분, (그래서) 말끝이 자주 흐려지는 분, 말과 말 사이에 민감한 분, ‘없음’과 ‘모름’이 삶과 사회를 풍성하게 한다고 여기는 분, 자기표현이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분. 지도자보다 ‘촉진자’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하는 분, 국민이 아니라 (세계)시민이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분… 이런 분들께 이 책은 인문학의 최전위일 것이다.
‘나’와 우리를 돌아보고 더 나은 내일을 꿈꿀 때 이만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글이 또 어디 있으랴 싶다. 그렇다. 미래는 ‘불온한 말’에서 시작되며 이런 분들께는 적극 권한다고 말했다.
반면 작가는 ‘책의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수록 이 책은 성공이다. 책을 집어 던질 정도가 된다면 대성공이다. 말에 대한 당신의 고루한 생각에 균열이 갔을 테니까.’라고 말한다.
하나의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아서 매주 글을 쓸 수 있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쓴 120여 편의 글은 말을 하고 사는 누구나 어떤 글에서는 균열을, 어떤 글에서는 안도감을, 어떤 글에서는 재미를, 어떤 글에서는 자유로움, 등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