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오문완
말, 정확하게는 낱말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문법에는 안 맞지만 아름다운 말들 있죠. 예컨대 ‘식물하다.’ 식물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말들은 살아남을 터이고 사회에서 두루 쓰이게 되면 표준말로 자리 잡을 겁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까닭은 <여는 글>의 제목을 어떻게 정할까 하는 고민 때문입니다. 요는 차별금지라는 게 법으로 못을 박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생활 속에서 내 몸에 붙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를 제목에 어떻게 담을까 하는 고민을 우리 회원님들과 나누고자 하는 거죠.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차별금지를 생활화해야’ 이런 얘기인데 이게 제목이 되면 너무 밋밋하죠. 일상(日常)이라는 한자어보다는 우리 고유어를 쓰는 게 좋겠는데, 그게 ‘나날’인지 ‘하루하루’인지도 자신이 없습니다.
여하간, ‘차별금지,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중요합니다. 노동의 영역으로 들어가 볼까요? 한겨레신문에서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릴레이로 연재하고 있는데요, 그 세 번째 얘기는 전국금속노조 부위원장인 권수정 씨가 들려주네요. 제목은 ‘18만 명 중 여성 6%, 채용차별 말고 설명할 수 있을까’이고 18만 명은 금속노조 조합원수입니다. 감이 오시죠. 제 눈길을 끈 건 이 대목입니다.
“모든 노동자는 인권을 침해받지 않고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평온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다.”
지난해 12월 7일 전국금속노동조합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채택한 모범단협안 ‘제8장 인권’의 첫 번째 문장이다.
우리 회원님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조금 부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단체협약이라는 건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의 계약인데 우리 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약칭: 노동조합법)]은 이 단체협약에 법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단체협약도 법이라는 얘기죠. 물론 상위 법령을 어기지 않았을 때 얘기입니다만.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이 단체협약을 가지고 차별금지법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앞의 글에서 모범단협안의 구체적인 내용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권 장에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넣은 이후 뭔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우리 노동조합 조합원 중 성소수자가 있다면 이 단협으로 어떤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할까? 그동안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배제되어 보장받지 못한 복지는 뭐가 있을까? 고민 끝에 배우자와 가족의 개념을 재정비했다. 특별휴가, 가족돌봄 휴직 및 휴가, 가족돌봄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 의료비 보조 등의 조항에서 ‘배우자는 법률상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 및 동거인을 포함하며, 가족은 법률상 혼인으로 성립된 가족 형태에 국한하지 않고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고려한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함한다’고 명문화했다. 예를 들어 본인과 배우자의 부모가 사망한 경우 특별휴가를 일주일 준다고 한다면 그동안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배우자의 부모가 사망했을 때 받지 못하던 특별휴가를 이제는 받을 수 있도록 모범단협안을 개정한 것이다.
물론 모범 단협안이라는 게 그 이름마냥 모범 즉 모델이니 이를 받을까 말까는 개별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의 줄다리기 문제가 되겠죠. 노동조합의 의지가 제일 중요할 터이구요. 앞으로 노동 현장에서 이 모델이 어떻게 기능할지 예측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단초가 열린 건 분명합니다. 그 씨앗이 열매로 자라날 게구요.
이 노동 현장에서의 변화를 다른 영역에서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요.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의 하루하루의 삶이 차별금지의 삶인지 차별을 부추기는 삶인지 따져보면 어떨까요. 적어도 울산인권운동연대 회원이라면. 인권의 영역이, 앞으로는 동물과 식물의 권리, 더 나아가서는 자연의 권리로 확산될 게 분명한데 산 낙지를 즐기던 습성을 버린다든가 하는 일(그 생물이 십힐 때 고통을 느낀답니다.)도 실천의 덕목에 포함될 겁니다. (아, 피곤해, 적당히 살자. 이런 반론-반발은 물론 예상됩니다만.)
올해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는 아주 중요한 해입니다. 인권 친화적인 인물들을 뽑는 건 우리의 몫이구요. 내 표 하나를 누구한테 주느냐 하는 것 역시도 차별금지의 생활화와 연결된다고 하겠습니다.
※ 오문완 님은 울산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며, 인권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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