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1-06 14:08
[58호] 편집위 생각? - 'RO사건'에 포위되어 버린 나
 글쓴이 : 섬균
조회 : 8,454  

‘RO사건’에 포위되어 버린 나

슈퍼마켓 문을 열자 흥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 좋으면 가면 되지 왜 여기서 난리야~!”
“그러게 말입니다. 이해가 안되요.”
60세 전후의 가게 주인아저씨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손님 간에 이야기다.
TV에서는 요즘 신문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일명 ‘RO'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자막에는 “내란음모”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찍혀있다.
우유와 요구르트를 손에 들고 계산대로 오는 과정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된다.
“친북세력들은 모두 다 북한으로 보내버려야 돼.”
“그렇죠. 우리나라가 싫다면서 왜 그리 남아있는지 모르겠어요.”
은근슬쩍 이야기 속으로 끼어들었다.
“아저씨도 지난번에 우리나라가 싫다며. 확 떠나고 싶다면서요?”
“그거야 정치인들 하는 꼬라지 보면 싫지. 그렇다고 진짜 떠나겠다는 것은 아니잖아! 그렇지만 쟤네는 체제 전복세력이잖아~!”
옆에 손님도 거든다. “그렇죠. 친북세력이잖아요. 그러니까 국정원이 있어야 한다니까요.”
가볍게 웃으며 계산을 하고 가게 문을 나왔다.
씁쓸하다. 이렇때 뭐라 해야할지...
무어라 할까? 진득하게 묻어나는 레드콤플렉스......
그리고 그 거대한 바람 속으로 모두 쓸려가버리는 정국 현안들.

청도에서 지인이 내려왔다. 간간히 통화는 했지만 얼굴을 맞대기는 오랜만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새 정치이야기로 흐른다.
“이제 국정원 사건은 덮어두고 민생문제로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민생문제를 다룬다 해도 국정원문제는 덮어두고 갈 문제가 아니지.”
“민주당이 아무리 그래봐도 풀릴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원래 선거 때는 그런 거잖아요?”
“그게 더 문제죠. 일반 국민이 아닌 국가기관이 움직인 거잖아요. 최소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죠.”
“선거 때 줄서기 하는 건 어쩔 수 없잖아요. 박근혜 후보가 지시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알아서 충성 보이려고 한건데....”
“만약 이번 일을 그냥 덮어두고 간다면 다음에는 더 많은 기관들이 움직이겠죠. 그러면 선거가 어떻게 민의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에이. 이정도 했으면 다음엔 안하겠죠. 그리고 국정원도 자기일 해야잖아요. ‘RO'사건도 해결해야 하고...” 이런.... 또다시 ‘RO'다.
지인은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원활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객관성을 띠고 이야기 한다고는 하지만 이야기는 꼬이고 만다.
‘오늘 이야기해야 할 우리 이야기 하자’며 주제를 돌렸다.

신문지면이 온통 ‘RO'사건이다. 그 속에 묻혀 나라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라 할 굵직한 현안들은 한쪽으로 밀려나 있다.
국정원 사건, 전두환 미납추징금 환수문제, 역사교과서 문제, 4대강 문제, 등등...
경제민주화와 비정규직 문제 등은 어느새 지면의 한자리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내 기억속에서도 서서히 흐려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