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1-29 09:37
[179호] 여는글 - 이스라엘, 상대 궤멸 아닌 평화적 수단 선택해야 평화 얻는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가 필요한 이유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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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상대 궤멸 아닌 평화적 수단 선택해야 평화 얻는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가 필요한 이유
신강협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점점 막장으로 흐르고 있다. 서구 언론을 비롯한 우리 언론들도 이를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라 명명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넘어, 또다시 ‘중동전쟁’, 이스라엘과 범이슬람 국가 간 전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어떻게든 이 전쟁을 확장시켜보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이스라엘의 막장 전투로 전쟁은 점차 확산일로다.

이 전쟁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중동에서 분쟁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보기도 하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정치적 상황을 놓고 이래저래 분석하기도 한다. 그 고통스러운 역사를 헤집어 보면 볼수록 이 전쟁은 누구의 탓이라고 딱 집어 이야기하기가 힘들다. 2000여 년 전 역사를 거론하며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모여든 시온주의자들이 상식적으로는 원죄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시온주의자들을 만들어내고 그들을 결과적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서구사회라고 볼 수도 있다. 반면, 직접적으로 이번 전쟁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발생한 것도 사실이며, 그 공격이 매우 잔인했음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전쟁의 원죄는 하마스일 수도 있다.
그럼 지금 이스라엘의 행위는 정당한 권리 행사가 될 수 있을까? 무기력한 UN의 역할과 여전히 이스라엘의 정당한 권리 운운하는 서구세력의 발언은 전쟁을 막장으로 이끄는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란을 위시한 이슬람권 국가 또는 무장세력들의 참전이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지만, 확전을 부추길지 아니면 확장억제가 될지 모르겠다. 다만 전쟁이 확장된다면 그들의 이기심도 스며드는 굉장히 더러운 전쟁이 될 것이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는 민간인의 희생을 최소화하라고 이스라엘에 그야말로 말만 하고 있다. 전쟁을 멈추라는 요구는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들먹이며 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내 어디든 마음대로 폭격하고 있다. 난민촌과 병원 등 인도적 시설에 대한 공격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이야기한다. ‘거기에 하마스 요원이 있었다.’ 누구도 정확한 내막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기가 막힌 해명에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다. 분노와 적개심이 인도주의적인 최소한 양심조차 덮어버린 듯하다.

전쟁에 휘말린 모든 이들은 말한다. 평화를 원한다고.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상대가 완벽히 굴복하여 자신을 괴롭힐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과연 그런 평화가 가능할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무력 진압해서 하마스를 궤멸시켰다고 하자. 압도적 힘으로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치자. 과연 평화가 올까? 그들의 저항이 소멸할까? 역으로 끊임없이 저항하려 하지 않을까? 2000년이 지나도 기필코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고자 전쟁을 불사한 이스라엘을 보라. 평화는 고사하고 세상은 끊임없는 분란과 테러로 고통받을 것이 자명하다. 또한 끝없는 보복 그리고 집단학살은 끝없는 원한 관계를 만들어낼 뿐일 것이다. 자녀들의 팔과 다리에 자녀들의 이름을 새겨 넣는 팔레스타인의 분노는 또다시 더 극단적인 정치세력을 만들어낼 것이다.

다양한 보도매체에 따르면, 하마스도 가자지구에서 그렇게 환영받는 정치세력은 아니라고 한다. 하마스의 폭력성과 부정부패로 인해 주민들의 지지는 약화 되었으며, 극단적인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가 생겨났다. 이스라엘의 충격과 고통을 이해하겠으나, 가자지구 내 상황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그리고 압도적 힘의 우위에 있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다 미래적인 대안을 고민했다면 이스라엘이 평화적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자지구에 대한 평화적 방식이 모색되었다면 하마스에 대한 지지기반은 더욱 약화 될 수 있었으며, 시민들의 분노를 줄인다면 극단적인 무장세력의 등장도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이스라엘 소년 납치살해 사건이 발생했고, 연이어 팔레스타인 소년에 대한 보복 납치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너무나도 참혹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이 벌어졌다. 이때 이스라엘 희생자 중 1명의 어머니의 레이첼 프랭클은 “당신(팔레스타인) 자녀나 우리 자녀 그 누구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겪어선 안 된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은 미사일이나 터널의 위험 없이 평화롭게 살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라고 팔레스타인 부모들에게 약속한다”며 “우리 스스로 아이들에게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걸 가르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후 이스라엘 희생자 부모와 팔레스타인 희생자 부모는 서로를 방문하며, 서로 위로하였다. 당시 CNN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나 미국의 케리 장관보다도 더 강력한 메시지라고 전하기도 했다.

갈등 상황이 발생하고, 당사자 양측에게 놓인 고통의 크기는 아무나 쉽게 가늠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저명한 평화학자 갈퉁은 갈등적 상황이 파괴적으로 갈 것인지? 창조적 전환의 기회가 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갈등 또는 분쟁의 상황이 매우 복잡다단한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갖는데, 다른 배경을 가진 주체들의 갈등은 상호이해의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갈등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어떻게든 건설적으로 유도하는 것을 갈퉁은 ‘갈등의 창조적 전환’이라고 말한다. 필자가 이해하기로 사회적 갈등, 국가 간의 갈등이 심화한다면 이는 당연히 분쟁, 전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상호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거나 배려한다면 상호 간의 협력과 공존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갈등의 창조적 전환이다. 어머니 레이첼과 팔레스타인 희생자 어머니는 갈등 상황 속에서 서로 이해하면서 평화를 깨닫고 그것을 요구한 것일 수 있다.

이스라엘의 폭력적 선택은 더 많은 사람의 목숨과 더 길고 긴 역사적 고통을 유발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당장 집단학살과 같은 전쟁을 멈추어야 한다. 평화는 평화적 수단에 의해서 구축될 수 있음을 이스라엘은 깨달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동·서부 지역의 모든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하마스의 공격으로 잔인하게 희생된 그리고 납치된, 납치 살해된 무고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집단학살극에 희생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평화를 기원한다.

※ 신강협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회원이며,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