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옳고 지금은 그르다(아니다)
오문완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숙고(熟考)는 없고 주장만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이곳에서 글 몇 자를 끄적거린다는 게 또 하나의 주장을 덧붙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글쓰기가 참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시키는 일은 해야 하는, 착한 누구로 쓰레기를 얹어 보겠습니다.
별로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지금 노동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사회연대입법 촉구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취지인즉슨 “노동법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람”이 약 1,300만 명(국민 4명 중 1명)인데 이들 일하는 시민을 위한 사회연대입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관련된 법은 셋으로, 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 차별 없는 노동조건 보호), ②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법제화(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임금 차별 해소), ③ ‘일하는 사람을 위한 권리보장법’ 제정(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에게 보편적 노동인권 및 사회안전망 보장)이 그러합니다.
이 글에서는 첫 번째로 제시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한정해서 설(說)을 풀어 보겠습니다. 문제는 우리 근로기준법에서 법을 전면 적용하는 건 상시 노동자가 5명 이상인 사업장으로 하고 4명 이하 사업장(소위 ‘영세사업장’)에는 일부 조항만 적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주 40시간제는 적용되지 않고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가산(加算)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등 소위 ‘돈 되는’ 조항은 그 적용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기실 이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닙니다. 이미 두 차례나 헌법재판소에서 그 위헌 여부를 판단한 바 있습니다.(헌법재판소 1999.9.16. 98헌마310 결정; 헌법재판소 2019.4.11. 2013헌바112 결정) 짐작하시는 바대로 헌재는 영세사업장에 일부 조항을 적용 배제하는 건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고 결정했습니다. 영세사업장은 능력이 없고 근로감독을 할 수도 없다는 게 주된 이유입니다. 아직도 600만 명의 노동자들(전체 노동자의 1/3)이 이러한 처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 결정에 대한 비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판 역시 두 가지 차원으로 접근합니다. 먼저 ‘사업장의 영세함’입니다. 사업장의 규모가 작으면 당연히 영세하다고 전제해버리는 게 문제라는 것이지요. 2016년 통계청의 <자영업 현황분석>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4명을 고용하는 사업장의 68.1퍼센트가 연 매출 3억 원 이상이고, 15.5퍼센트는 연 매출이 10억 원 이상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병의원, 법률사무소 등 규모는 작아도 사용자가 충분히 지불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영세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반박입니다. 다음으로 국가가 5인 미만 사업장에까지 근로감독을 하기란 어렵다고 하는 대목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최저임금이나 사회보험 적용, 퇴직금의 경우에는 1인 사업장까지 국가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 그런데도 근로기준법을 예외로 두는 것은 마땅치 않다, 는 반론이지요.
이 두 가지 주장에 대해 우리는 어느 쪽 손을 들어줘야 하나요? 해답은 “그땐 옳고 지금은 아니다.”라는 데 있을 겁니다. 근로기준법의 전면 적용 범위라는 게 상시 노동자 16명에서 시작해서 10명을 거쳐 5명으로 확대돼 왔는데 이제는 모든 사업장으로 넓혀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건 없습니다. 이상과 현실을 얼마나 잘 조화시켜 갈 것인가 하는 판단(결정)이 있을 뿐이지요. 법리적으로 정의라는 건 약자에 대한 보호를 의미합니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더 보호해야 한다는 얘기지요. 대신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드는 건 법에 대한 불신과 경시 풍조를 만들어낼 터이니 이 점도 경솔하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의 법감정이라는 것도 있구요.(법감정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잘은 몰라요, 라고 답할 수밖에 없기는 합니다만)
간통죄가 폐지된 과정을 보면 감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간통죄는 헌재에서 다섯 번이나 검토를 해서 결국 폐지됐습니다. 1990년 합헌 결정(89헌마82) 이후 계속해서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보다가 2015년에 와서야 위헌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2009헌바17)(25년이 걸렸네요!) 이 간통죄 위헌 결정의 궤적을 쫓다 보면 이제는 근로기준법에서 영세사업장에 전면 적용하지 않는 제도가 위헌이라고 결정할 시기가 왔다고 하겠습니다.(이제 25년이 다 됐군요! 물론 이는 전적으로 제 생각이고, 합리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세 번의 위헌 심판을 더 거쳐야 한다면 한참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문제는, 헌재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정치의 사법화’를 더욱 고착(固着)시킨다는 데 있겠습니다. 여야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문제를 국민의 대표도 아닌 헌재에다 떠넘기는 행태를 저는 보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면, 우리가 더욱 가멸차게 정치권을 압박할 도리밖에 없구요.
여하간, 이 문제는, 그땐 옳고 지금은 아니다, 라는 게 답입니다.
※ 오문완 님은 울산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인권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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