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1-09 15:11
[178호] 인권 포커스 - 겹겹의 차별과 혐오가 응축된 구금시설 - 외국인보호소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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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사무국
조회 :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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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의 차별과 혐오가 응축된 구금시설 - 외국인보호소를 말하다
아정
# 취약성을 강화하는 공간, 출입국외국인청의 ‘보호실’ – 수용 중 사망사건과 어린이 구금 문제
외국인보호소의 ‘특별계호실(독방)’, 출입국외국인청의 ‘보호실’에서 발생하는 존엄성의 훼손은 빈번히,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자해를 한다고 독방에 가두면 문제가 해결될까? 정신장애인, 알콜의존증 환자, 약물사용자, HIV감염인에게 왜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제공하지 않고 독방에 가두는가. 상해 혹은 사망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법무부는 “보호외국인의 자해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 조치”라고 말하며, 당사자들의 취약성을 사건의 원인으로 내세우는 저열함을 보인다. 그들이 왜 자해에 이르렀는지, 무엇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되거나, 그들의 취약성에 대해 겹겹의 혐오를 양산하는 방식으로 왜곡된 해명을 내놓는다.
일 년 전 부산출입국외국인청에서도 입소 8시간 만에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의사 한 명 없는 구금시설에서, 경찰과 출입국공무원이 자의적으로 의료적 판단을 내리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끌고 다니다가 제대로 된 의료 조치도 받지 못한 채, 길바닥에서, 구급차 안에서 허망하게 숨을 거둔 이가 있다. 독방 감금, 제압 과정, 보호 장비 사용, 호송과정, 의료시설 미비 등 그의 취약성을 강화했던 조건이나 환경 등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법무부/출입국/외국인보호소가 해주겠다던 그 ‘보호’는 목적도, 기능도 모두 상실했다. 구금으로 미등록비국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로 인식해야 한다.
출입국외국인청의 '보호실'에는 종종 어린이들이 양육자와 함께 구금된다. 법무부 이민조사과는 "'(바깥에) 어린이의 보호자가 없을 경우, 함께 구금할 수 있다'는 근거규정이 있어서 그냥 풀어주기는 곤란하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근거 규정이 있는 한, '장기구금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만으로는 끊어낼 수 없는 국가폭력이 있다. 이 폭력은 비국민을 상대로, 감염인을 상대로, 정신장애인을 상대로, 약물사용자를 상대로, 사회적 좌표가 취약한 이들에게, 취약하면 취약할수록 더욱 거칠게 휘둘러진다.
예배당에서, 콘서트장에서, 그것도 모자라 이번엔 잠깐 집 앞에 장보러 나갔다가 단속된 이들이 이 사회에서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다.
#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발생했던 '새우꺾기' 고문사건에 대한 국가배상소송
지난 8월25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발생했던 '새우꺾기' 고문사건에 대한 국가배상소송 첫 변론이 열렸다. 피고 대한민국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고문피해자 M의 바로 옆에 앉아서 '징벌적' 독방구금과 '새우꺾기' 고문을 비롯한 모든 폭력이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며, 제기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신발을 신으니 걸음이 어색하다..." 보호소 안에서 1년 동안 신발을 신을 일이 없었던 M이 '밖'에 나와 했던 첫 마디였다. 구금은 일상의 감각마저 앗아갔다. 사건이 발생한지 2년이 지났지만, 가해자 처벌도, 사과도, 배상도 이뤄지지 않은 채, 이 사건은 잊혀지고 있는 중이다. '밖'으로 나온 M은 2년 동안 법무부와 출입국의 감시 하에 '취업불가'인 상태에서, 누군가의 도움에 기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무력감과 좌절감, 공허함이라는 또 다른 '고문'을 견뎌야 했다. 이 나라를 떠날 수도, 그렇다고 머물 수도 없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시간들을, 그는 고스란히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는 공간의 감옥에서 시간의 감옥으로 옮겨져 여전히 갇혀있다. 이번 국가배상소송의 과정은 국가폭력이 무엇인지, 공권력이 무엇인지, 공공의 안전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낱낱이 그 기만이 드러나는 법정이 될 것이다.
# ‘단속’이라는 국가폭력과 출입국공무원의 ‘재량’ – 젠더기반폭력 피해자의 구금
'성폭력피해자'가 경찰에 신고를 해도 미등록이주민이라는 이유로 피해구조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출입국사범'이 되어버린다. 2021년 나고야 출입국에서 스리랑카 국적의 여성 위슈마 산다마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소송 과정에서 CCTV 등의 공개를 통해 주구장창 강조되었던 것은 구금상태에서 그녀가 당했던 끔찍한 처우, 그리고 무참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었다. 위슈마의 죽음이 문제화되는 방식에 대해, 지금까지도 당시에 느꼈던 커다란 위화감을 지울 수 없다. 애초에 위슈마는 동거 중이었던 같은 국적 남성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파출소로 도망쳐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는 과정에서 구금되었는데, 이 부분은 제대로 문제로서 드러나지 못한 채, 그저 수용소에서의 '비참한 죽음'만이 집중 보도되었다.
가정폭력/데이트폭력/성폭력 피해자가 그 피해사실을 경찰에 알려도, '미등록' 상태라는 이유만으로 피해구조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출입국사범'이 되어버리는 사례는 한국에도 종종 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런 경우 경찰은 피해자를 곧바로 출입국청에 통보하고 넘기면 안 된다(한국의 경우, 출입국시행령 제92조의2 통보의무의 면제 조항이 있다). 위슈마의 구금은 애초에 경찰과 출입국공무원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지도, 적절하게 대처하지도 못했던 것이 발단이었다.
처음엔 귀국하겠다던 위슈마가 일본에 남겠다고 한 이유는, 이미 스리랑카에 귀국한 파트너에게 돌아오면 죽여버리겠다는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위슈마는 마음을 바꾸어 귀국을 단념했지만, 이러한 잔류의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송환기피자'로 간주되었다.
한국에서는 전시성폭력을 포함한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의 젠더기반 폭력이 난민인정 사유로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주구금 시설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의 무참함에 압도되어,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 충분히 문제화되지 못한 부분들을 잘 드러내어 여러 논의가 이어지면 좋겠다.
# ‘보호일시해제’의 이후의 불가능한 삶과 ‘탈시설’이라는 문제설정
외국인보호소 폐지운동이 ‘탈시설’이라는 문제설정에 접속하게 된 것은 외국인보호소를 나와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부터다. 외국인보호소에서 ‘보호일시해제’로 풀려나도 미등록비국민들은 노동권, 이동권, 건강권, 주거권이 등이 보장되지 않을 뿐더러, 출입국외국인청에 매달 출석하여 도망가지 않았다는 사실 뿐 아니라, 도망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입증해야 하는 상태, 즉 ‘추방-유예’의 상태에서 위태롭고 불안한 삶으로 내몰린다.
장애인 탈시설운동의 최전선에서 시설폐지를 이뤄낸 활동가들은 탈시설운동이 다름 아닌 ‘주거권운동’이라고 입 모아 강조한다. 장애인들에게 시설을 나온다는 건 ‘집을 만드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M이 우여곡절 끝에 보호소를 나오게 되었을 때, 그를 조력하면서 제일 먼저 고민했던 것도 바로 ‘살 집’이었다. 미등록인 상태에서는 자기 이름으로 월세 계약을 할 수도, 통장을 만들거나 휴대폰을 개통할 수도 없다. M에겐 누군가의 이름을 빌려서만 살아낼 수 있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 출입국관리법 제63조 1항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에도 ‘폐지운동’은 멈출 수 없다
‘무기한 구금’의 근거가 되어 온 출입국관리법 제63조 1항의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시설에서 보호할 수 있다”는 문구는 사실상 ‘보호’가 아닌 ‘구금’이냐 아니냐는 논의를 차치하고서라도, 무엇보다 송환 자체가 불가능한, 돌아갈 곳 없는 난민신청자들을 ‘기한 없이’ 구금시설에 가두는 법적 토대로 기능해왔다. 이 조항은 기본적으로 누군가 이 사회에서 격리되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 위에 군림한다. 악법이 유지되는 동안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무려 4년 8개월을 부당하게 갇혀 지내야 했던 이도 있었다. 출입국관리법 제63조 1항에 대한 세 번의 위헌 제청 끝에, 2023년 3월 23일,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헌법재판소 2020헌가1, 2021헌가10 병합).
물론, 무기한 구금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은 환영할 만한 성과다. 그러나 이러한 결실이 곧장 장기 구금자들의 즉각적인 보호해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이번 판결만으로는 단속-구금-추방이라는, 가난한 국가에서 온 비국민을 향해 차등적으로 행사되는 합법화된 연쇄적 국가폭력을 끊어낼 수 없다. 위헌제청, 입법 그리고 법 개정운동이 이주구금 문제를 다룰 때 중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국경통제’라는 원초적인 국가 폭력 앞에서, 이를 사법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위화감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헌재 결정 이후로도 법무부와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대적인 합동단속을 실시하여 일터뿐만 아니라 예배당, 콘서트장, 마트, 버스정류장과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비국민들을 잡아들였다. 비국민들의 일상은 이렇듯 ‘공공’의 이름으로, ‘국민’의 안전을 위해, 느닷없이 들이닥친 공권력에 의해 하루아침에 중단된다. 올해 상반기에만 3만 7천여 명이 강제출국 혹은 자진출국이라는 이름으로 ‘추방’당했다. “외국인보호소 지금-당장 폐지하라”는 목소리를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아정 님은 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InternationalWaters31
/ 화성외국인보호소방문시민모임마중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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