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9-27 15:18
[177호] 이달의 인권도서 -『 가족 각본 』김지혜 저 / 창비 2023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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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각본
김지혜 저 / 창비 2023 / 정리 : 한주희

<책소개>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교수의 두 번째 대 기획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가족제도를 해부한다.

베스트셀러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의 두 번째 저서가 출간되었다. 전작에서 일상 속의 차별과 혐오를 날카롭게 들여다본 저자는 4년 만에 내놓는 저서 『가족각본』에서 우리가 너무나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 온 가족제도에 숨은 차별과 그에서 비롯되는 불평등을 추적한다.

<책속으로>

198쪽~200쪽
한국사회가 가족의 해체와 붕괴를 논하며 개인의 책임을 탓하는 사이, 가족생활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책임은 은폐되었다. 대신 가족은 국가 경제를 위해 인력을 공급하는 단위로 여겨지곤 했다. 저출생을 위기라 말하면서도 사람을 노동력으로서의 ‘인구’로 여기고, “출산은 애국”이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사회는 사람을 도구화하는 데 익숙해졌다. 이제 가족정책과 인구정책을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정부의 무감각함 속에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야 할 이유는 더 사라진다.

장경섭은 ‘가족 도덕’의 회복을 강조하는 정치적 기조의 이면에, 국가가 사회보장 책임을 축소하면서 이를 합리화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한국의 공공부문 지출 수준은 낮은 편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공공부문 지출의 비중은 프랑스 31.6%, 독일 26.7%, 일본 24.9%, 스웨덴 23.7%, 영국 22.1% 등이고, OECD 평균이 21.1%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공공부문 지출은 GDP의 14.8%에 불과하다. 한국은 사회보장에 필요한 비용을 아끼고 가족에게 돌봄의 책임을 맡김으로써,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렇게 기업 역시 오랜 시간 돌봄의 책임을 피하며 이익을 누렸다. 돌봄을 ‘사적인’ 가족의 문제로 분리시키고 여성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의지한 결과, 기업은 돌봄에 관해 신경 쓰지 않고 노동자의 노동력을 한껏 사용할 수 있었다. 기업은 돌봄의 책임과 무관하다는 생각에서, 여성을 결혼과 육아를 이유로 차별하고 남성에게 과도한 노동시간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국가의 ‘가족 정책’은 여전히 가족이 공동생활을 위한 시간을 갖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일보다, 아동을 돌봄 기관에 맡김으로써 국가와 기업이 노동력을 확보하게 만드는 데 집중되어 있다. 돌봄을 국가와 기업을 포함한 모두의 책임이자 개인의 권리로 인식하고 함께 연대하게 될 때, 비로소 불평등한 돌봄의 시간도 재배치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문제다. 다양한 가족의 현실과 변화에 따라 제도를 개선하고 설계하며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는 재정을 마련하는 일은 수많은 사람의 연구와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엄청난 프로젝트다. 그런데 다른 제도들도 그렇다. 변화하는 사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안을 찾는 일을 우리는 ‘정책’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구호에 동조하며 기존의 가족질서를 고수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성별이 사람의 인생을 규정하던 시대를 넘어가고 있고, 부조리한 가족 각본을 벗어나 모두의 존엄하고 평등한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서평>

대다수 사람에게 ‘가족’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우리 가족의 모습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일 것이다. 당연히 모두가 같은 모습을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여태 배우고 목격했던 대로 부, 모, 그리고 자식으로 이루어진 모습이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동성부부, 트랜스젠더 부부, 미혼모, 미혼부 등은 당연히 배척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어디선가 가족을 이루고, 가족을 이루고 싶어 하면서 살고 있다. 2023년인 지금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개념의 가족보다는 변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모습의 가족도 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는데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잘 모르는 일처럼 받아들였다.

당장 내 주변에 없다는 핑계로 관심 가지지 않고 있었는데 책에서는 고정된 남성, 여성의 역할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성별 역할 분담으로 가정을 꾸리는 것에 있어 남성은 가장으로 가족들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한 소득을 벌어들여야 하고 여성은 가사책임을 짊어짐과 동시에 임금노동 역시 게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고정적 성 역할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부담을 주며, 변해도 한참을 변한 지금 사회에 맞는 통념인가?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리를 떠돌았다.

내가 가진 이성애적 연애관에서 결혼을 이야기하니 쏙쏙 와 닿으면서 동성애적 결혼관을 가지신 분들의 이야기는 아예 문제라고 인식조차 하지 않았다. 책은 제도 안에서 대다수가 아닌 소수를 교묘하게 배척하고 차별하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려준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 못하고 놓쳤던 부분들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