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사라지지 않는』 영화관람 후기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
박미영
장애인 인권에 대해 강의를 들으며 인권의 개념과 내용을 알아갈 즈음, 학생을 대상으로 인권 강의를 하고 계시는 분의 소개로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세계인권선언의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존엄하고 평등하다.’라는 인권 의식을 바탕으로 영화를 보았고 한국전쟁 후 정치적 이념으로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이들이 양지로 나오지 못한 채 사라져 가고 있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의 시간이 되었다.
매미 울음소리와 작열하는 태양 아래 연신 땀을 훔치며 자발적으로 유해발굴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기록조차 희미해진 학살의 피해자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한다. 왜, 무엇 때문에 정부의 공권력이 아니라 시민발굴단에 의해서 유해발굴을 하게 만들었나? 드러내지 못했던, 누군가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면 할수록 개미지옥과 같이 고뇌와 어둠으로 끌어당기는 정치적·경제적 이념의 원리로 관철된 한국적 과거 청산이 형식적으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분명한 사실은 두 이념 간의 전쟁 속에 그저 생명줄 하나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만 했고 세상에 존재했던 흔적마저 지워져야 했다. 또한, 내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감시하고 고발해야 했고 험한 시국을 비판하는 한숨 소리마저도 삼키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억울하고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학살피해자의 유해를 찾아 그 넋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움직임이 시민발굴단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조차 알 수 없지만,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이 행해졌던 곳이라 제보를 받게 되면 의논을 거쳐 시민발굴단이 활동의 목적지를 정하고 세밀한 발굴 활동을 하게 된다. 발굴된 유해는 치아와 뼈를 감식함으로써 나이와 성별을 파악하는 과정을 거친다. 학살은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리라 생각했던 나의 섣부른 판단은 아기의 유해와 수많은 비녀 그리고 낡은 여성 구두에서 무너져 내렸다. 학살의 현장에는 인간의 존엄이란 없었다. 옹알이가 전부인 아기에게 반동이라는 죄의 성립이 가능할까? 그저 밀가루 한 포대를 얻기 위해 명부에 이름을 적었고 그것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정당한가? 학살의 결과에서 왜 죽임을 당해야 하는지의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기록된 이름 하나가 학살의 구실이 되며 정당한 이유가 되었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김말해 할머니, 낡은 흑백 사진 속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나이 든 할아버지, 깊은 주름 속에 간직한 전쟁에 대한 공포와 나의 소중한 사람을 잃어야만 했던 아픔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로 그리움과 한으로 남아있었다. 그분들을 위해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 유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드리는 것, 그것은 산(生)자들과 죽은(死)자들을 위로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그저 죽임을 당했으리라는 심증이 유해를 발굴함으로써 확증으로 변하게 되고 유가족의 품으로 전달되었을 때 제대로 된 죽음을 수습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머릿속에 스크린이 쳐진 것처럼 답답함과 의문들이 생겨났다. 경제적 발전으로 인한 선진국 반열에 진입, 한류 등 바깥세상에서 보여지는 화려함의 이면에 여전히 땅에 묻혀 나무뿌리와 함께 엉켜 자신들의 존재를 찾아주길 바라는 한 맺힌 넋이 존재한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유해발굴은 진흙탕 물을 휘젓는 과정이 아니라 흙을 체에 거르는 과정이다. 정치적인 이익이나 손해를 밑바탕에 둔 과정이 아니라 한 인간이 태어나 세상에 존재했음을 기록하는 과정인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학살되었던 보도연맹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책과 동영상 등을 통해 사실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었던 내 어머니와 시부모님께 그 당시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전쟁의 공포, 아수라장, 그리고 배고픔 등 전쟁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아픔을 쏟아내는 말씀 뒤로 혹여 이웃 또는 지나가는 이의 귀에 소리가 새어 나갈까 걱정하시는 모습에서 어쩌면 전쟁으로 명명된 총과 포의 공포보다 익숙한 이웃, 가까운 지인에 의해 고발되어 고초를 치루거나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더 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전쟁의 역사만을 기억하는 20대의 내 자식들은 이해와 공감을 보이면서도 또래들의 관심사는 과거의 역사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재 상황에 대한 급속한 전개와 결과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과거사보다는 현재의 삶과 미래의 발전에 대한 기대가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미래도 언젠가의 과거가 된다. 돌무더기와 흙더미 속에서 과거의 아픈 역사와 상흔을 지닌 채 사라져가는 유해를 발굴하는 것은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인권유린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활동이다. 지금도 한국전쟁 학살피해자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시민발굴단이 활동하고 있다. 돌아가신 분의 삶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며 제대로 된 쉼, 인권의 회복 즉 영면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그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 박미영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신입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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