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9-07 15:35
[164호] 인권 포커스 Ⅱ - ‘조_빠_가 시대’의 위험한 원자력 진흥 정책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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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_빠_가 시대’의 위험한 원자력 진흥 정책

이상홍


세간에 윤석열 정부를 일컬어 ‘조_빠_가 시대’라고 한다. 듣기에 어감이 좋지 않은 말이다. 대통령 선거 때 윤석열 후보가 공약을 홍보하는 영상에서 “좋아 빠르게 가!”라고 외친 것을 비꼬아서 부르는 말 같다. 또한 상당히 위협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최고 권력자의 “좋아 빠르게 가!”라는 외마디에 ‘다른 의견’이 끼어들 틈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눈에는 “좋아” 보여도 국민의 눈에는 “싫어”가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빠르게 가!”는 87년 이후에 우리 사회가 차곡차곡 쌓아왔던 다양성의 시대를 무너뜨리고 권위주의 시대로 후퇴할 위험이 크게 도사리고 있다.

새 정부 100일을 겪으며 많은 이들이 윤석열 정부가 무엇을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국민에게 국정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혼란스럽다고 비판한다. 그런 가운데 분명한 국정 목표가 하나 있으니 바로 ‘탈원전 정책’ 폐기다. 단순 폐기를 넘어 원전산업 적극 진흥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월 5일 발표한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안)’을 들여다보면, 2030년에 18기로 예상되는 원전을 28기로 높여 전체 발전설비에서 원전을 30% 이상 유지하겠다는 목표다. 울진의 신한울 3, 4호기를 건설하고, 수명이 끝나는 노후 원전을 모두 수명연장 한다는 계획이다. ‘조_빠_가 시대’가 걱정되는 에너지 정책이다.

원자력은 국제 에너지산업에서 ‘사양 산업화’의 길로 들어선 지 오래됐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원전진흥 정책은 여러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난관이 산업, 경제적 측면을 뛰어넘어 국민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형태로 나타날까 매우 우려된다. 우리나라의 원전산업은 건설 및 운영에 특화되었고, ‘안전 관련 기술’은 해외에 의존해왔다. 국제사회가 이미 원자력과 손절했기 때문에 ‘안전 관련 기술’ 산업도 생태계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원전 설비는 높은 온도, 압력, 방사선에 견뎌야 하는 특수한 재질의 부품이 많이 사용된다. 지금까지 수입하거나, 국내에서 제작하더라도 해외의 검증기관에서 검수받아왔던 안전등급 부품을 이제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기술력도 부족하지만, 규모의 경제가 사라져서 비용 단가도 맞추기 어렵다.

이것이 최근 10년간 우리가 자주 접하는 ‘짝퉁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이 발생하는 배경이다. 수명연장을 부르짖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노후 원전들은 갈수록 수렁에 빠질 것이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 진흥 정책은 핵발전소 주민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고 있어서
큰 문제다. ‘공정과 상식’이 있는 정부라면 지난 40년간 소외되고 차별받고 희생을 강요받아 온 핵발전소 주민의 처지를 먼저 살펴야 했다. 새 정부가 말하는 원자력 진흥이 대도시에 핵시설을 새롭게 증설하겠다는 계획은 아닐 것이다. 기존 핵발전소 지역에 핵시설을 더 들여놓는 정책이고,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지방에 핵시설을 더 들여놓는 정책이다. 머지않아 수도권과 대도시를 향하는 고압송전탑 증설로 제2, 제3의 밀양 주민들이 눈물을 흘릴 것이다.

경주 월성원전 주민들은 만 8년째 이주를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펼치고 있다. 2014년 8월 25일 농성을 시작했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목도하면서 발전소에 옆에 붙어사는 삶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집과 논밭을 부동산에 내놓았으나 전혀 팔리지 않았다. 어린아이부터 팔순 노인까지 ‘핵발전소 주변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자산을 처분하지 못해 이사하고 싶어도 못 가게 됐다.
8년 넘게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천막농성을 펼치는 배경이다. 주민들은 헌법에 보장된 ‘거주이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헌법적 권리가 박탈되면서 사는 곳은 ‘마을’이 아니라 ‘수용소’로 전락했다.

바스쿳 툰작 유엔인권특별보고관이 2015년 10월 16일 천막농성장을 찾아왔다. 바스쿳 툰작의 방한 일정에 천막농성장 방문은 없었다. 핵발전소 옆에서 농성하는 주민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일정을 무리하게 변경하여 찾아온 것이다. 제33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바스쿳 툰작은 한국의 발전소 주변에 대해 “주민들의 거주권, 특히 거주 가능성과 주거지 위치와 관련한 권리가 보호되고 있지 않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작금 추진되고 있는 고리2호기 수명연장도 마찬가지다. 만일 고리2호기를 10년 더 가동하면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가 넘친다. 하지만 정부는 저장 수조가 넘치는 문제를 쉬쉬하면서 수명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수명연장이 결정되면, 수명연장을 핑계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더 건설할 것이다. 핵발전소 주민들만 또 피를 보게 된다. 저장 수조 문제를 떳떳하게 공개하고 대안을 마련한 후에 수명연장 문제를 공론에 붙여야 한다.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밀도에서 원자력 시스템을 더 늘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사실을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마른 수건 쥐어짜는 식의 희생을 계속 강요하면서 핵발전소 지역에 핵시설을 증설하는 정책은 곤란하다. 서울과 경주, 서울과 울주, 서울과 기장, 서울과 울진, 서울과 영광은 별반 다르지 않다.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모든 핵발전소는 대도시를 끼고 있다. 원자력 진흥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조_빠_가’를 멈추고 국민과 약속한 ‘공정과 상식’을 되찾길 바란다.

※ 이상홍 님은 경주환경련 사무국장이며, 탈핵경주시민행동 집행위원장입니다.